<기고>팽창된 도시 이젠 다듬을 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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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들의 도시가 나날이 커지고 또 달라지고 있다.나지막한 목조건축물들은 철골조의 마천루로 바뀌고,걸어서 다니던 도시생활이지하철과 자동차 중심으로 바뀌고,논두렁이 아파트촌과 대로로 바뀌고,땅위에서 정원을 가꾸며 살던 패턴이 아파트 속으로 빨려들고… 이렇게 변해왔고 또 변하고 있다.아마도 이렇게 숨가쁘게 변하고 있는 도시가 지구상에 또 있을까.
해방 당시 우리나라 인구 20% 정도가 도시인구였는데 이제는80%이상이 도시민이 되었다.어느새 도시국가가 되어버렸다.그런데 우리의 도시 생활은 점점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워지고 있다.교통문제.공해문제.과밀로 인한 주택과 범죄문제등, 이로 인해 도시의 삶은 점점 고달퍼지고 있는 것이다.
밤길을 걷기가 두렵고,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모르는 동네살이는 공동체의식이 자리할 수 없다.너무 밀도 높은환경에서 너무 많은 인간 접촉은 우리를 두렵게 하고,우리 주변에 휴식할 수 있는 푸른 공간이 자꾸 줄어들고 있다면 우리의 삶은 너무 삭막하다.
소득수준은 계속 올라가고 있는데 우리 도시의 삶의 질은 과연비례하고 있는가.우리 도시환경이 경제수준만큼 선진국의 문턱에 와 있는가.여기에는 많은 의문이 있다.
우리나라 도시들은 너무 급작스럽게 팽창해 각종 시설이 항상 부족하다.무엇보다 사회간접자본,즉 교통.통신시설이나 각종 생활환경이 너무 부족하다.주택도 부족하고 물도 깨끗하지 못하다.선진국 도시들은 수세기에 걸쳐 도시시설을 가꾸고 다 듬어 왔다.
그런데 우리 도시는 달구지나 다니던 작은 도읍에서 임기응변으로그때그때 이쪽저쪽으로 산넘고 강건너 커 왔을뿐이다.
도시 주변에는 획일적인 아파트 숲이 병풍을 두르고 있다.軍병영같은 아파트단지들이 도시를 에워싸고 있다.불량주택재개발이나 아파트 재건축도 우리 주변을 더욱 밀도 높고 현기증나는 고층의환경으로 만들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양적 팽창에 치우쳐 질적 향상을 도모할 겨를이 없었다.집짓는 일에만 몰두했지 도시 가꾸는 일을 등한시했다.이제 우리가 이룬 경제성장의 과실을 뿌려서 선진적인 편리한 도시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환경의 질은 미래도시의 운명을 좌우할 중요한 척도다.자연의 자정능력보다 더 빠르게,환경과학기술의 진보보다 더 빠르게 도시환경이 나빠지고 있다.고수부지로 나가 보는 한강물은 더 탁해지고 있지 않는가.자동차는 끊임없이 산소를 소비하고 매연을 내뿜고 있다.따라서 적절한 밀도를 유지하고 시내 또는 주변의 산이나 물,그리고 그린벨트등과 조화된 환경은 도시생활에 필수적이다. 앞으로 본격적인 지방자치제 실시와 함께 도시간의 경쟁이 치열해 질 것이다.지방자치의 기본이론은「발에 의한 선택」(choose by foot)이다.도시간에 기반시설이나 행정서비스의 경쟁이 벌어지고 주민들이 스스로 살기 좋은 곳을 솜 택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도시는 지하철과 도로가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보행자의 흐름과 안전성이 도시공간 속에 용해돼야 한다.
그리고 기반시설과 다양한 기능이 무리없이 도시의 틀 안에 앉아 도시생활의 율동과 생기가 피어나야 한다.아울러 도시서비스는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 도시활동을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이런 도시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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