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실명제 무엇이 문제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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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부동산실명제란 자기 재산을 남의 이름으로 등기해 두었던 것을자신의 명의로 환원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명의신탁제」의 폐지가 곧 부동산실명제인 것이다.
그러나 「땅의 주인」을 밝히는데는 「돈의 주인」을 밝히는 금융실명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문제가 뒤따른다.
「돈의 주인」을 밝히는데 있어서는 이름을 빌려준 사람과 실제 주인이 신고만 하면 그만이지만 「땅의 주인」을 밝 히려면 세금문제등 부수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수두룩하다.
우선 남의 이름으로 돼 있던 것을 자기 이름으로 다시 등기를하는것은 통장의 예금주를 바꾸는 것처럼 절차가 간단치 않다.등기에는 일정한 요건이 있기 때문이다.예금주를 바꾸는 것처럼 자유롭게 명의변경을 허용해 준다면 양도세나 증여세 .상속세 포탈을 노린 가짜 명의신탁해지 신청이 봇물을 이룰 것이다.
실제로 이 방법은 지금도 탈세.투기목적의 부동산거래에 종종 쓰이고 있다.예를들어 A가 B로부터 부동산을 구입하면서 명의신탁해지를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를 신청하여 양도받는 것이다.즉 원래부터 A가 B에게 명의를 신탁해 두었던 것처럼 가장하는 방법이다.이과정에서 양도세가 사라지는 것은 물론이다.
90년8월1일에 제정된 부동산등기특별조치법은 탈세.탈법.투기목적의 명의신탁행위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법이 시행된같은해 9월1일이후 이뤄진 명의신탁행위중 이에 저촉되는 경우는어떻게 다뤄야 할지도 과제다.완전한 실명제를 이루려면 실명전환기간동안은 동기를 따지지 않고 명의신탁의 해지를 모두 허용해 줄 수 밖에 없는데 이는 결국 탈법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꼴이된다.실명화를 하고 싶어도 제도적으로 불가능한 경우는 어떻게 구제해줄 것인지도 문제다.예를들 어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땅을 구입했으나 허가요건이 되지 않아 현지 주민의 이름으로 그냥 남겨 둔 경우가 많다.사실 부동산실명제에 저촉되는 명의신탁의 유형은 이 경우가 제일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를 실명제 명분으로 일괄 허가를 내준다면 이 역시 투기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토지개발공사등 공공기관에서 이런 땅을 사주는것도 한 방법이긴 하지만 수백만건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이들 토지를 모두 사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또 법인의 경우는 꼭 투기목적이라기 보다는 사업시기의 문제로비업무용토지로 판정될 것을 우려하여 임직원 명의로 해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 모두 실명화하라면 기업의 사업추진에 막대한 영향이 올 것이다.따라서 이 경우는 비업무용토지에 대한 규제완화가 선행돼야 한다.
토지전산망의 가동만으로 부동산실명제 실시의 토양이 마련됐다고생각하는 것도 오산이다.토지전산망은 토지대장상의 소유실태를 기초로 한다.따라서 등기소에서 시.군.구청으로 소유권 변동을 통보하는 과정에서의 누락분은 전산망에도 기록되지 않는다.토지전산화와 함께 등기전산화가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등기전산화는 아직도 요원하다.이 틈새에서 실명제를빠져 나가는 경우가 없으란 보장이 없다.
〈李光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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