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최우석 칼럼

경제 회생의 걸림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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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경제를 걱정하는 소리가 높다. 세계적으로 경제가 좋아지고 있으며 일본마저도 10년 불황에서 벗어나고 있다. 우리는 올해 성장률이 5%도 어렵다고 한다. 지난해 성장률이 3% 미만이니 이대로 가면 장기 침체를 우려해야 한다.

일본도 처음 불황에 빠지는 줄 알고 빠진 것도 아니고 애를 안쓴 것도 아닌데 열심히 헤매면서 10년 세월을 보냈다. 불황 탈출을 위해 모두들 열심히 했다. 정부는 재정확대를 통해 경기진작을 노렸고 정치권은 유권자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애를 썼으며 기업과 은행들은 살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그러나 엉뚱하게 예산을 쓰고 근본 수술보다 미봉책에 급급했으며 특히 정책 실기를 많이 했다. 그 때문에 경제회생이 늦었고 결과적으로 모두가 범의(犯意)없는 죄를 짓고 말았다는 반성이 나오고 있다. 일본 경제의 회생은 기업과 은행의 자생력 회복이라는 근본적 방법 외에는 없었던 것이다.

***犯意없는 죄가 경제 망칠 수도

범의없는 죄가 경제에 가장 겁나는 것이고 그것을 범할 가능성은 우리도 충분히 있다. 경제를 좋게 하기 위해 애를 쓴다고 꼭 좋은 결과가 오는 것은 아니다. 힘을 쓸 데 써야 한다.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확실한 길은 무엇일까. 좋고 벅찬 일일수록 멀리서 찾기 쉬우나 의외로 가까이 있는 경우가 많다.

첫째,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경제에 기여하는 길이 있다. 지금 사명감을 가진 사람들이 매우 많고 이들은 각자 자기 분야에서 너무 열심히 하고 있다. 복잡하고 정교한 사회의 톱니바퀴가 제각기 궤도와 속도를 가지고 돌아야 경제가 선순환이 될 것이다.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가장 높은 가치나 우선순위에 따라 각 분야의 속도와 방향이 정해져야 하는데 경주마같이 외곬로 달리는 사람이 많으면 자원 낭비와 충돌이 일어난다. 제각기 로드맵을 짜고 경쟁하듯 전력 질주하니 일은 열심히 하는데 제대로 성과가 안 나오는 것이다. 경제부서 안에서도 재경부.실물 부처.금감위.공정거래위.국세청이 각개약진하고 있다. 얼마 전 국세청장이 열심히 했는데도 경제부총리에게 핀잔을 받았는데 사실 경제 때문에 대통령으로부터 핀잔받을 사람이 아직 많은 것 같다. 나라를 위해 열심히 하고 있다 하니 야단은 칠 수 없고, 그러다 보니 경제는 잘 안되고 참 답답할 것이다.

둘째는 조금 입을 다물고 있는 것도 경제에 크게 기여하는 길이다. 지금은 전문가와 유식자들이 너무 많고 이들의 열정과 확신은 매우 강하다. 모든 일엔 좋은 면과 나쁜 면이 있는데 종합 평점해서 플러스가 되면 밀고 나가야 한다. 그러나 유식한 참여자들이 많으면 문제점들이 강조되고 그러다 보면 아무 것도 못하게 된다. 일본에서 크게 후회하고 있는 것이 부실 금융기관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의 적기를 놓친 것인데 그 때문에 손해는 손해대로 보고 지금 일본 금융이 일본 경제의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다. 공적자금 투입이 일찍 검토되었으나 국민의 혈세를 부실 은행을 위해 쓸 수 있느냐는 힘센 주장 때문에 용단을 못 내렸던 것이다. 일하는 손보다 말하는 입이 많으면 일이 안되는 법. 나라를 위해 한마디 거드는 것도 좋지만 그것들이 잘못 모이면 경제를 뒤로 밀 수 있다. 일 좀 할 수 있게 입 다물고 기다려 주는 것도 이 시대에 필요한 미덕이다.

***평론하는 것과 정부 일은 달라

마지막으로 아무 자리나 함부로 앉지 않는 것도 경제에 큰 도움이 된다. 근년에 들어서 직접 벗어부치고 나서는 사람들이 많은데 잘못하면 본인의 낭패는 물론 경제에 큰 상처를 입힐 수 있다. 밖에서 보고 평론하는 것하고 실제로 일을 맡아 하는 것하고는 크게 다르다. 경제는 열성과 선의로만 안 된다. 머리 나쁘고 부지런한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괜찮은 사람도 안심할 수 없다. 세상이 하도 빨리 변하기 때문에 어느새 구식이 되어 버린다. 아무리 삼고초려라 해도 심사숙고해야 한다. 어떤 자리를 맡아 나라에 기여할 수도 있지만 맡지 않음으로써 더 기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요즘은 모두들 경제에 범의없는 죄를 범하기 쉬운 무서운 시대임을 알아야겠다.

최우석 삼성경제연구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