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과학기사, 정확성이 첫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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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울대의 황우석.문신용 교수팀이 인간배아 복제를 통해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는 연구 성과가 보도되는 과정에서 국내 언론 매체들 간에 상당한 논란이 있었다. 중앙일보가 다른 언론보다 하루 먼저 보도한 사실에 대해 많은 매체에서는 국제적인 보도제한협약(엠바고)을 파기해 한국 과학계의 위상을 추락시켰다고 비난했고, 이에 대하여 중앙일보는 엠바고 요청을 받은 바 없고 요건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는 해명성 기사를 실은 바 있다. 과학자의 입장에서는 이 시점에서 어느 쪽의 주장이 옳은지를 따지는 것보다는, 이번 사건이 국내 언론의 과학기사 보도의 질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면 과학기사의 보도에 있어 무엇이 중요할까.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정확성.신속성, 그리고 충실도가 보도의 질을 평가하는 기본적인 척도가 될 것이다. 이 중에서도 과학의 특성상 정확성이 가장 중요한 요건이다. 사실 과학의 연구결과는 전문가가 아니라면 그 진위를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학술지들은 전문가들의 엄격한 심사를 통해서만 논문의 게재 여부를 결정한다. 이러한 평가가 끝나기 전에 연구결과를 언론에 홍보하는 것을 과학자들은 매우 위험한 행위라고 보며 심지어 비윤리적이라고 여긴다. 아마도 이러한 행동의 위험성을 가장 잘 보여준 예가 1989년 미국 유타 대학의 두 화학자가 발표한 '상온 핵융합(常溫 核融合)' 현상일 것이다. 이들은 전문가의 검증없이 언론 발표를 통해 인류의 에너지 문제를 항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핵융합을 간단한 전기화학적 방법으로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수년간에 걸친 후속 연구에 의해 이들 주장의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면서 언론 보도만 믿고 5백만달러를 지원한 유타주(州)정부는 주민의 세금만 낭비하고 손을 떼고 말았다. 이번 인간배아 줄기세포 배양에 관한 중앙일보 보도는 이미 전문가들의 검증은 끝난 뒤였으므로 정확성에 관한 한 보도 요건은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전문가들이 인정한 연구 성과에 대해 왜 학술지에서 보도제한을 요청하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사실 대부분의 학술지에서는 엠바고를 요청하지 않는다. 오히려 많은 경우 게재가 확정되지 않은 논문들도 '예비논문(preprint)'의 형태로 자유롭게 유통된다. 이러한 관행은 학술정보의 빠른 유통이 학문 발전을 촉진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다만 사이언스나 네이처와 같은 극소수의 학술지에서만 보도제한 규정을 두고 있는데, 이는 이들 학술지의 위상 제고와 관련이 있다. 어느 학술지이건 중요한 논문을 싣고싶어 하며, 또한 언론에서 그 중요성을 크게 보도해 주기를 바란다. 네이처와 사이언스는 이러한 면에 특히 관심을 많이 기울이는 학술지라서 이번 경우처럼 필요하면 직접 기자회견을 열기도 한다. 그런데 자신들이 발표할 내용이 먼저 알려지면 홍보효과가 반감될 것이기에 미리 엠바고를 요청하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엠바고는 과학기사 보도의 본질적 내용과는 큰 관계가 없지만, 보도제한이 깨졌을 경우 학술지 편집자와 저자들 간의 신뢰에 손상을 줄 수는 있기에 조심해야 할 것이다.

이번 보도 파동을 보면서 아쉬웠던 것은 엠바고 파기라는 지엽적인 문제에 휘말리면서 대부분의 언론 보도가 충실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번에 발표된 인간배아 복제 기술은 치료 목적으로 장기를 복제할 수 있는 길을 연 획기적인 성과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인간 복제에도 이용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는 것이어서 많은 나라에서는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양면성이 있는 연구 성과를 보도하면서, 단순히 생명공학에서 국가의 경쟁력을 높였다는 것만 강조하고 과학의 사회적 책임과 국민적 합의의 필요성이 소홀히 취급된 것은 부적절했다. 이제 한국이 생명복제 연구에서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으므로 그에 걸맞은 책임의식과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매우 시급하다.

오세정 서울대 교수.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