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인균의 뇌(腦)이야기] ‘눈빛’으로 말하세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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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호 27면

그리 잘생기지는 않았지만, 성실하고 순박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서른다섯 살의 노총각이 있다. 그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 크리스마스를 연인과 함께하고 싶은 소박한 소망을 갖게 된 그는 그녀에게 고백을 했다. 멋진 꽃다발과 선물, 그리고 구애의 말…. 더 이상 부족할 게 없었지만, 너무나도 수줍은 나머지 그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녀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애석하게도 그의 사랑 고백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녀에게 진심을 전달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앨버트 메러비안에 따르면 우리가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할 때 말 자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7%에 불과하다. 그보다는 말의 톤이나 억양, 크기 등이 메시지 전달에 더 큰 비중(38%)을 차지하며, 몸짓이나 눈빛 같은 비언어적인 태도가 오히려 가장 중요한 역할(55%)을 한다는 것이다. 그가 조금만 더 용기를 내 강렬하고 확신에 찬 눈빛을 보여줬다면 그녀의 마음을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눈을 마주치는 것이 사회적 관계 형성에 중요하다는 사실은 예전부터 심리학자들의 실험에서 많이 다루어져 왔다. 1970년대의 한 실험 결과에 따르면 으슥한 술집에 동일한 신체조건을 가진 여자들이 일정 시간 동안 앉아 있을 때, 눈을 마주친 횟수에 비례해 말을 걸어오는 남자들의 수가 많아졌다.

성취감·쾌감을 느낄 때 활성화되는 뇌의 부위.

그렇다면 눈마주침이 과학적으로도 의미가 있을까? 2001년 저명한 과학저널 ‘네이처’에 실린 뇌영상 연구 결과는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준다. 런던칼리지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각기 시선을 달리한 동일한 여성의 사진을 보고 각 사진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판단하도록 했다. 그리고 기능적 자기공명 뇌영상(fMRI)을 통해 이들의 뇌가 어떻게 활성화되는지를 관찰했다. 그 결과 사진 속 여성의 시선은 그 여성에 대한 매력도 평가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즉 실험 참가자와 눈을 마주치는 사진이든 아니든 간에 호감은 그대로 유지됐다. 하지만 뇌의 활성에서는 큰 차이를 보였다. 자신과 눈이 마주치는 사진을 볼 때 참가자들 뇌의 구조 중 ‘배측 선조체(線條體)’라는 부위의 활성이 유의미하게 관찰된 것이다. 이 부위는 큰 성취감을 맛보거나 육체적 혹은 심리적 쾌감을 느끼는 경우에 활성화된다고 알려져 있다. 또 사진 속의 여성을 매력적으로 느낄수록 이 부위의 활성이 증가했으나, 눈을 마주치지 않는 사진의 경우에는 상대를 매력적으로 느껴도 뇌의 활성은 관찰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상대방의 외적인 매력보다 그 사람과 눈을 마주치고 있는지에 따라 뇌가 흥분하게 된다는 것이다.

눈을 마주친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다. 따라서 누군가 자신에게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애정에 대한 욕구, 관계에 대한 욕구는 보상을 받게 된다. 오죽하면 ‘눈빛’이란 말까지 생겨났을까. ‘눈빛’이 통하는 순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회적인 관계는 시작된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가 이루어질 때 보상과 쾌감의 뇌 영역에서는 활성을 보인다. 진실된 마음과 호감은 외모나 뛰어난 화술을 넘어 상대의 눈을 통해 얻어진다. 떳떳한 사람이라면 ‘세 치 혀’로 상대방을 뒤흔들기보다는 ‘진실된 눈빛’에 승부수를 띄우리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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