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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해외석학진단>폴 케네디교수에 들어본 21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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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구상에 진정한 강대국이란 이제 존재하지 않으며 21세기에는 미국문화와 反미국문화간 대결양상이 나타날 것이다.
한반도 통일은 북한정권의 붕괴로 이뤄지겠지만 한국은 독일통일에서와 같은 커다란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역사학자 폴 케네디박사는 다가올 다음 세기의 지구촌과 한반도에 대해 이같이전망했다.
美 동부 코네티컷州 뉴 헤이번의 예일大 국제안보연구소에서 진창욱(陳昌昱)워싱턴특파원과 가진 신년(新年)인터뷰에서 케네디교수는 중국의 개혁성공이 한국의 장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하고,세계적 추세인 세계화가 초래할 문화충돌의 역작용 역시 한국의 장래에 적지 않은 도전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또 정보혁명의 21세기는 배운 자와 배우지 못한 자의 격차가 두드러지는 세기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따라서 한국이 당면한 가장 중요한 도전은 교육의 성공에 있다고 강조했다.
[편집자註] -이제 다음 세기로의 진입에 마지막 5년을 남겨두고 있다.시대의 전환점에서 금세기의 끝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겠는가.
『시대의 전환이란 매우 설명하기 어려운 말이다.역사는 지속과변화를 동시에 품고 이어지기 때문이다.지금 세계는 기존 통치구조가 오랫동안의 정체속에서 서서히 붕괴 또는 변화하는 가운데 과학기술의 획기적 발전과 새로운 사상의 전파등으 로 급속히 전환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시 말해 기존 구조의 힘겨운 지속과 새로운 진전이 혼재된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90년대는 모든 것이 변화하고 있다기 보다 지속과 변화가 공존(共存)하는 시기라고 봐야 할 것이다.』 -세계는 90년대를 전후해 공산주의 붕괴라는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이같은변화가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공산주의의 대대적인 붕괴와 영향 축소는 어떤 측면에서 보면별 의미가 없다.동유럽국민들에게는 공산주의사상 소멸이 법과 질서,그리고 강력한 국가지도력의 붕괴보다는 훨씬 의미가 적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와 오랜 기간 대치해왔거나 인접해 살아온 한국과 일본,그리고 서방세계의 공산주의사상에 경도된 지식인들에게는금세기말의 공산주의 소멸이 엄청난 정신적 혼란을 안겨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공산주의가 존재했다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와 같은 제국이 존재하고,또 이 제국이 붕괴한 사실이다.설령 공산주의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도 러시아같은 전통적 제국은 어차피존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따라서 공산주의사상의 패배보다는 제국의 붕괴가 더 중요하다.
제국이 붕괴하면서 혼란이 계속되고 내전과 국경전쟁,그리고 이민족간 대결과 긴장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이로 인한 혼란과 군사적 대결은 상당히 오랜 기간 지속될 것이 분명하다.』 -舊소련 붕괴 후 중국은 유일한 사회주의 강대국으로 남았다.중국을빼놓고 세계의 변화를 논할 수 없다는 점에서 중국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중국의 미래는 여러가지로 나타날 수 있다.
먼저 중국이 현재의 경제성장을 지속,경제적.기술적으로 훨씬 강대해지고 나아가 군사적으로도 더욱 강대해진다는 시나리오다.중국은 또한 거대 인구를 유용히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환경문제를 해결하고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며 양질의 교육 여건을 조성하게 되면 중국은 경제대국도 될 수 있을 것이다.
비관적 시나리오도 충분히 상정할 수 있다.
국에는 상대적으로 부유한 해안지역과 빈곤한 내륙지방간에 분열조짐이 높아가고 있다.중앙정부도 독자성이 강한 지방정부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가 하면,중국군부도 그 위치가 흔들리고 있다. 또 환경문제에서 심각한 압력과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삼림훼손과 강물오염이 심각하다.12억 인구를 환경훼손없이 근대화할 수 있을 것이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더 나쁜 시나리오는 중국 중앙정부가 대륙 전체를 통제할 수 없어 중국 전 역에서 크고 작은 분리와 내전이 발생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든 중국의 장래는 한국에 대단히 중요한 요소다.
중국이 강대해지고 경제적으로 자신감을 가지며 거대 시장을 형성하고,또 군사대국으로 안정될 경우 한국은 중국이라는 거인의 그늘에 가릴 가능성이 크며 한국으로서는 당연히 이를 우려해야할일이다. ***이 와 반대로 중국이 조각나 내전을 겪게 되고 사회불안이 높아져 대규모 난민이 발생할 경우 이 역시 한국에는커다란 부담이 될 것이다.따라서 한국의 입장에서 가장 바람직한중국의 장래는 중국정부의 점진적인 민주화와 안정된 경제성장,특히 환경파괴없이 이같은 목표가 달성되어가는 일이다.』 -舊소련의 붕괴는 냉전시대의 2개 축(軸)중 미국이라는 하나의 축만 남겼다.또 미국을 군사적으로 유일한 세계 최강국으로 밀어올렸다. 미국의 이런 위상이 앞으로 세계에 미칠 영향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舊소련의 붕괴는 미국과의 과도한 군비경쟁 소산이었으며 이는 미국에 대단한 호재(好材)가 됐다.미국은 이제 80년대와 같이 많은 예산을 국방비로 지출하지 않아도 되고,그러면서도 계속 최강국으로 남을 수 있게 됐다.이제 어떤 나라도 미국과 군비경쟁을 할 수 없게 됐다.그 결과 美국민 모두가 국내문제에 골몰하고 있으며 대외개입도,특히 국제경찰국가로서의 역할도원하지 않게 되어가고 있다.
예를 들면 美국민들은 보스니아사태에 개입하기를 원하지 않고 있다. 「이제 지구상에 진정한 강대국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에드워드 러트워크(美국방부 자문위원)의 주장은 무척 인상적이다.
강대국이란 강력한 군대만 보유하는 나라가 아니고 커다란 희생을감수하면서라도 대규모 군사력을 사용할 정치적 의지를 갖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이런 점에서 본다면 미국은 더이상 舊시대의 강대국이 아니다.』 -사회주의국가들의 붕괴이후 자본주의가 역사상 지금처럼 번창했던 적은 없는 것같다.사회주의 이념은 과연 인류에 그 효용성을 잃었으며, 앞으로 세계에서 또 자본주의에 대적할 다른 가치나 신념체계의 등장을 예상할 수 있겠는가.
『지금 세계는 자본주의와 내셔널리즘,그리고 종교가 강력히 대두되고 있는 형국이다.공산주의 붕괴이후 자유시장경제와 자유방임주의를 주축으로한 자본주의 메시지가 매일 전세계 통신망을 통해전파되고 있다.
***그 러나 국민에 따라 이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다르다.이것이 미국의 청년문화나 영어라는 외국어에 의한 언어적 지배,또는 농민의 전통식량자구책을 저해하는 것을 의미하거나 미풍양속.성문화.자녀교육등을 저해하는 것을 의미하게될 경우 완 강한 저항에 부닥치게 된다.
저항은 주로 국수주의자 또는 회교원리주의자등으로부터 나오며 자본주의가 경제적으로 성공하더라도 역시 반발을 불러올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세계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결이 아니라 미국식 방임주의 문화와 反미국문화의 대결로 나타날 것으로 생각한다.이같은 현상은 이미 한국을 비롯,프랑스.일본.회교권등에서 나타나고 있다.』 -올해는 전후(戰後)반세기가 되는 해이자 한국으로서는 해방 50주년이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이같은 전환점을 맞아 한국이 당면한 도전은 무엇이며 대응자세는 어떠해야 한다고 보는가.
『한 시대를 가름하는 것은 30년,50년의 주기가 아니라 세대의 개념에서 보아야 한다.
신세대의 한국인들,즉 올해에 성인이 되는 세대는 차세대 국가정책결정자다.이들 세대는 시대적 전환기를 맞아 지난 30년간 엄청난 변화를 겪어온 한국의 세계속에서의 위치를 가늠하고 이해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따라서 젊은 세대들의 관심을「앞으로 한국이 지향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할 것인가」하는 쪽으로 유도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한국이 당면한 가장 커다란 도전은 한마디로 정신개혁의 문제다.지속적인 변화와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세계 속에서 한국인이 어떻게 21세기를 준비할 수 있도록 일깨울 것인가가 문제라는 것이다. ***그 러기 위해 교육과 언론을 활용해야 한다고 제시하고 싶다.교육과 언론을 통해 한국민들은 학문.과학.교육.상업.무역.기술의 지속적인 변화를 얻을 수 있다.
또 한국인들이 그 길만이 급변하는 세계속에서도 스스로의 장래를 제대로 준비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교육이 한국인이 당면한 가장 중요한 21세기를 향한 도전이라할 수 있다.』 -한국이 당면한 도전중엔 북한의 장래도 있을 수 있다.북한의 장래는 어떻게 보는가.
『북한은 그 스스로의 장래와 관련해 다음 세가지 시나리오 중하나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우선 피폐된 경제를 안은 채 현체제를 유지하는 것이다.북한정권은 이 경우 주민을 먹여살릴 수없어 붕괴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 보수적인 방 법으로 신중한 개혁을 실시,겉으로는변화가 없는 것처럼 위장하면서 실제로는 경제난국 타개를 모색하는 것이다.
나머지는 북한이 완전개방과 공산주의 포기를 선언하는 것이다.
가장 가능성이 큰 선택은 김정일(金正日)정권이 두번째 시나리오를 선택하는 것이다.』 -한반도 통일의 가능성을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보는가 『한반도통일은 북한정권 붕괴를 통해 수년내 이뤄질 것으로 생각한다.그러나 독일통일의 전례처럼 대가는 클 것이다.
한반도통일은 분명히 가능성이 있고 충분히 당위성이 있다고 본다.』 -한국정부는 최근 세계화를 기치로 내세우고 있다.세계화는 과연 무엇을 뜻하며 장애는 없겠는가.
『세계화는 두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기술적 과정으로 이는 중단시킬 수 없다.세계는 이미 환율통제를 제거했다.고정환율이 없어지고 자유시장경제원리에 의한변동환율제가 자리잡고 있다.위성과 광섬유통신을 통한 세계통신망이 구축되고 있 고,컴퓨터통신이 생활화되고 있다.
***이 제는 어느 나라도 이를 통제할 수 없게 됐다.
어느 나라의 재무부도,다국적 기업도 이를 통제할 수 없는 상태다.북한이나 쿠바처럼 국가경제를 폐쇄하지 않는 한 이 과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만일 세계화가 기업의 경쟁력 제고에 도움이되 고 국민생활수준 향상에 도움이 된다면 좋은 것이다.그러나 세계화가 문화적 위협,언어적 위협,생활방식에의 위협이 된다면 각국은 세계화의 속도를 늦출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세계화가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커다란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프랑스는 프랑스문화.프랑스어. 프랑스 국민성의 보전을 위해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이는 모든 문화가 당면한 도전이다.』 -21세기는 정보혁명의 시대로 이미 규정되고 있다.특히 정보고속도로가 가져올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나는 대규모 광섬유통신망을 통해 컴퓨터 앞에서 모스크바에 있는 제자나 영국.캐나다.호주의 대학원생들과 전자통신으로 대화하고 있다.이미 정보고속도로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정보고속도로는 우편배달부에 의해 운용되지 않고 있다.
정보고속도로는 새로운 기술발명과 다름없다.새로운 기술발명은 교육을 받지 않은 인구에게는 아무런 혜택을 주지 않는다.정보고속도로가 신문사나 과학.통신분야,그리고 메시지교환에는 매우 유용할 것이 틀림없다.그러나 정보고속도로가 가져올 우려는 이로 인해 혜택받는 인구가 전체 인구의 15%이내에 그치는데 있다.
따라서 정보고속도로는 앞으로 교육받은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간의 격차만 더 크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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