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표 "공천 늦출 납득할 이유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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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2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상득 국회 부의장과 환담하고 있다. [사진=조용철 기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28일 이명박 당선자 측의 총선 공천 연기 주장을 반박하고 나섰다. 대통령 선거 이후 현안에 대한 언급을 자제해 온 박 전 대표가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박 전 대표의 이 같은 입장 표명으로 한나라당 내 '친 이명박' 진영 대 '친 박근혜' 진영의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런 가운데 이 당선자와 박 전 대표가 29일 회동하기로 함에 따라 둘 간의 만남에서 공천 관련 논란이 진화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오후 3시30분쯤 국회 본회의에 참석하러 가다 기자들을 만나 "들리는 말이나 보도를 보면 (내년 총선) 공천이 늦춰진다는 것 아니냐"며 "한나라당이 공당인데 당원과 국민에게 (제시할 공천이) 늦춰지는 데 대한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앞서 그는 "(대통령직) 인수위 작업도 중요하고 당으로서는 (총선) 공천도 굉장히 중요하다"며 "한나라당은 공당인데…"라고 말했다. 또 박 전 대표는 "당권.대권 분리 문제는 어떻게 보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당헌.당규에 나와 있는 대로 (완전 분리)해야 한다. 당연하죠"라고 답했다.

박 전 대표는 이날 특유의 조용 조용한 어투로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지만 대답 중 "한나라당이 공당인데"라는 표현을 두 번씩 써가며 공천 연기의 부당성을 강조했다. 박 전 대표 측은 대선 이후 제기된 이명박 당선자 측의 총선 공천 연기 주장에 소극적으로 대응해 왔으나 박 전 대표의 반박으로 기류가 변할지 주목된다.

총선 공천 연기는 이재오 전 최고위원과 이방호 사무총장이, 당권.대권 일체화 논의는 박희태 전 국회 부의장이 최근 내놓은 주장이다. 이들은 모두 당 경선 과정에서부터 이 당선자를 도운 최측근들이다.

이 때문에 박 전 대표 측은 이들의 발언이 '사당화(私黨化)'를 위한 전초작업일 수 있다는 의혹을 품고 있다. 박 전 대표의 한 측근은 "공천을 예년과 달리 굳이 대통령 취임 뒤로 늦추고 대통령과 당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려는데, 어떻게 사당화 기도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며 "박 전 대표는 이런 기도가 과거 자신이 대표시절 만든 상향식 공천제도를 훼손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당선자와 박 전 대표는 29일 오후 서울 시내 모처에서 만난다. 28일 핵심 당 관계자는 "대선 이틀 뒤인 21일 이 당선자가 박 전 대표에게 감사전화를 했을 때 회동을 제안했고 실무진이 일정을 조율한 결과 29일 만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당선자는 박 전 대표를 만나 대선 기간 지원유세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와 새 정부의 운영방향 등에 관한 의견을 나눌 것으로 알려졌다. 이 당선자는 대선 직전 기자회견에서 박 전 대표에 대해 "국정 현안을 협의하는 정치적 파트너, 소중한 동반자로서 함께 나가겠다"고 말했었다. 한 당직자는 "대선 이후 첫 만남인 만큼 주로 덕담을 주고받지 않겠나"고 말했다.

그러나 27~28일 이 당선자 측이 공천 연기를 기정사실화하고 28일엔 박 전 대표가 직접 나서 이를 반박함에 따라 공천 시기와 방법, 당권.대권 분리 원칙 등 민감한 정치 현안이 대화의 주제가 될 가능성도 크다. 만일 두 사람의 대화가 잘 풀린다면 당내 갈등이 조기 진화되고 양자 간 파트너십이 견고해지겠지만 의견 차이만 확인하는 회동이 된다면 양 진영 간 갈등의 골이 깊어져 당내 혼란을 불러올 수도 있다. 박 전 대표의 한 측근은 "덕담만 주고받을 거면 왜 만나느냐"며 "박 전 대표가 진정한 정치적 파트너로 인정받는 회동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글=이가영.남궁욱 기자 ,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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