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일기가 맺어준 사랑의 만남-6순 洪顯謨씨와석문국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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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서울종로구인사동에서 화랑을 경영하는 홍현모(洪顯謨.61)씨는지난달 자신의 모교인 충남당진군 석문국교의「50년후배」10여명으로부터 편지를 받고 깜짝 놀랐다.
『선배님 저는 5학년 장혜정이에요.선배님이 보내주신 「사랑의일기장」을 쓰면서 하루하루가 알차고 보람있었어요.일기장 위에 보면 웃어른께 인사하기.양보하기.질서지키기.절약하기.환경보호.
고운말-바른글쓰기란 칸이 있는데 그 칸을 비워놓기 싫어서 날마다 인사도 하고 휴지도 주웠어요.휴지도 아껴쓰고,버스도 줄서서타고…』『이렇게 저희를 잊지 않아주시는 선배님을 언젠가 만나 보았으면 해요.아직도 학교는 잊지 않으셨죠.향숙 드림.』 글자는 비뚤고 맞춤법은 엉성하지만 아기자기한 그림까지 그려넣은「후배들」의 갖가지 편지엔「할아버지 선배」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차있었다. 『가슴이 찡하더군요.저는 그저 조그만 정성을 표시한 것이고 곧 잊어버렸는데 아이들은 정성어린 편지를 보내왔으니….
』 洪씨는 올 6월 中央日報에서「사랑의 일기보내기 운동」에 관한 기사를 읽으며 얼핏 자신의 고향마을 국민학교를 떠올렸다.
학교를 졸업한지 47년,외아들에게서 손자를 보아 할아버지가 됐지만 모교는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었다.운동을 주관하는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회장 金富成)에 10만원을 보내『내 이름은 밝히지 말고 석문국교에 일기장 4백권을 보내달라』 고 요청했다.그곳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일기를 쓰며 곱고 맑은 심성으로 자라달라는 바람과 함께….
洪씨의 1년 선배이기도 한 석문국교 김종원(金鍾源.62)교장선생님은 뜻밖의 선물을 받고 너무 기뻤고 2학기가 시작된 9월부터 고마운 정성에 보답해 아이들에게 열심히 일기쓰기를 지도했다.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변했다.눈빛.말씨.몸가짐.학습태도가 모두 눈에 띄게 달라졌다.
金교장은 아이들이 하도 대견해「이렇게 고마운 선물을 해준 선배가 누군가」를 인추협에 수소문했고 자신의 1년후배인 洪씨를 찾아냈다.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들은 아이들은「고마운 선배님」에게 감사편지를 보냈다.「洪선배」도 곧바로 후배들에게 답장편지를 썼다.조그만 일기장이 50년 세월을 뛰어넘는 사랑의 가교를 놓았다.
28일 낮12시 석문국교 교정에선「洪선배님」과 이학교 6학년1반「후배」20여명의 송년만남이 이뤄졌다.『꼭 한번 놀러오시라』는 후배들의 청을 선배가 받아들인 것이다.새해에도 일기를 계속해 쓸수 있도록「사랑의 일기장」을 선물로 안고 아이들의 박수속에 교정에 들어선 洪씨는 쑥스러운듯 얼굴을 붉히면서도 못내 흐뭇한 표정이었다.아이들은「洪선배님」옆에 앉아 50년전 학교모습,마을모습,선생님들의 얘기를 들으며 깔깔거리고 즐거워했다.「사랑의 일기」가 맺어준 50년 선.후 배의 정은 시간가는줄 몰랐다. 아이들을 위해 고민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어른들과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나는 아이들이 있는한 우리의 내일은 밝을 것이다. 「사랑의 일기」는 6월1일 中央日報보도를 계기로 각계의 참여가 줄이어 연말까지 50만권이 전국에 보급됐다.
〈金鴻均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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