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삼칼럼>無難과 개혁 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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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2.23 개각에 대한 언론의 대체적인 평가는「무난하다」는 것이었다.참신성은 발견하기 어려웠음에도 이 정도의 후한 평가를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의 행정이 그만큼 무력.무능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무난했다고는 하지만 엄밀히 말한다면「무난」은「평범」과통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평범」은「기대미흡」이란 말로 이어질수 있다.
무엇이 그런 느낌을 갖게 하는가.그것은 새 내각과 차관급 인사,그리고 청와대 비서진을 포함한 새 행정팀이 실무능력면에서나호흡면에서 볼때 안정감을 주긴 하지만 개혁이란 측면에선 오히려후퇴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주기 때문이다 .
지난 2년간을 통해 우리들은 국가경영이라는 것이 의지나 의욕만으로 되는게 아니란 것을 절감해왔다.이미 우리 사회의 부피는커질대로 커졌고,밀어닥치는 국제변화도 복잡다기하기 짝이 없는 것이어서 의욕과 의지만으로는 국정을 감당할 수 없음은 누구라도인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이번 인사에서도 아마 그러한 점이 깊이 고려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능면에서의 효율과 안정성의 확보면 그만일까.결코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국민들이 현 시점에서 참으로 바라는 것은 개혁이다.
국정의 안정과 효율도 도외시할 수 없는 것이지만 굳이 안정이냐,개혁이냐의 양자택일을 강요한다면 개혁쪽을 택하겠다는 것이 국민의 마음이다.그같은 민심은 최근 발표된 나라정책연구회의 여론조사결과를 보아도 잘 알 수 있다.조사결과에 따 르면 국민의80%가「지금까지의 개혁으로는 미흡하므로 지속적으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응답하고 있다.「개혁은 충분하므로 대화합조치가필요하다」는 견해는 18.7%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국민의 기본적인 생각에 비춰 보면 이번 인사가 결코 흡족할 수 없을 것이다.대다수 국민들은 아마도 참신성과 능력을 함께 갖춘 그런 인물들의 등장을 바랐을 것이다.그러나 이번 인사는 그 어느 때보다 폭이 컸음에도 새로운 인물이 라고는 청와대 비서실의 정책수석정도가 고작인 것이다.
이러한 점이야말로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앞으로 짊어지고 나갈 무거운 짐이요,숙제라고 본다.
정부는 현재「세계화」라는 새로운 개혁과제를 내걸고 있다.「세계화」라는 구호 자체가 아직도 추상적이고 불투명한 단계에 있기도 하지만 세계화가 그대로 우리 사회의 발전을 보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세계화는 자칫하면 국내적으로는 마찰적 실업(失業)의 증가,빈부격차의 심화,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확대라는 부작용을 가져올 위험성을 함께 안고 있다.따라서 긍정과 부정의 양면을 함께 파악하는 종합적인 안목이 없이는 국민이 기대하는 결과를 얻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점에도 대통령이 어떤 성격의 개혁의지를 갖는가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실은 새 정부가 지닌 가장 큰 취약점이 복지의 상대적 홀대이기도 하다.집권 초기엔 경제의 활성화가 발등의 불이었기 때문이라고 이해한다해도 내년의 예산배정에서 역시 복지가 상대적으로 푸대접 받고 있는데 대해서는 사회적 불만이 고조되 고 있는 오늘이다. 뿐만인가.통일문제에 있어서도 새 팀의 컬러로 보아 지나치게 정책이 보수화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들도 적지않다.다시 앞서의 여론조사결과를 인용하면 국민의 71.1%가「정치.군사적 문제가 해결되기 전이라도 경제협력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정경분리론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이는 현재의 통일안보팀이 과거의 직책에서 추진했던 정책과는 큰 거리가 있는 것이다.
***능력의 활용이 과제 결국 문제는 대통령이 어떻게 국책의방향을 잡느냐에 달렸다고 본다.그렇다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 노를 젓는 필요까지는 없다.그건 오히려 복지부동과 행정의 경직성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다만 능력면에서「무난」을 어떻게「개혁」쪽으로 활 용하느냐 하는 것만은 전적으로 대통령의 책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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