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보호주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고매하신 의원님들. 저희는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외부의 강력한 경쟁자 때문에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 경쟁자는 바로 '태양'입니다. 이 불평등한 상황을 시정할 법을 하나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국민이 낮에 모든 창문을 닫고 커튼을 쳐 태양광을 받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입니다. 이렇게 자연광(光)을 차단해 인공광의 수요를 창출해 내면 프랑스에서 수많은 산업이 번창하게 됩니다. 양초산업이 발달하고, 이의 원료인 유지방을 제공하는 소와 양을 기르는 낙농업이 번성할 것입니다.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해 값싼 외국산 철강.곡물.직물 등의 수입은 막으면서 거저나 다름없는 태양광을 막지 않는 것은 비논리적인 처사입니다. 의원님들의 합리적인 선택을 부탁드립니다. 양초 등 조명 관련업자 일동." 1840년대 프랑스의 경제학자 클로드 프레데릭 바스티아가 보호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청원서 형태로 쓴 글이다.

1980년대 미국 시장을 석권하던 일본 자동차회사들은 미국 의회의 압력에 밀려 미국 수출물량을 줄였다. 이로 인해 미국 내 자동차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자동차 값이 올랐다.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더 높은 값에 차를 팔 수 있게 됐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미국 소비자들에게 돌아갔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로버트 크랜달은 "미국 정부는 미국의 소비자들을 큰 접시에 담아 빅3 자동차 회사들에게 갖다 바쳤다"고 꼬집었다. ('유쾌한 경제학' 토드 부크홀츠 지음)

경제학의 기본원칙들도 보호주의 앞에 서면 무력해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보호주의가 일자리라는 명분까지 들고 나오면 경제논리가 설 자리가 없어지곤 한다. 최근 그레고리 맨큐 백악관 경제자문회의 의장이 공장.콜센터 등을 해외로 옮기는 해외 아웃소싱이 장기적으로 미국 경제에 이롭다고 말했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맨큐가 맞는 말을 했다고 옹호하고 있다. 그러나 해외 아웃소싱 때문에 미국의 일자리가 줄고 있다며 정부 사업을 수주한 기업의 해외 아웃소싱을 금지하는 법안까지 추진하고 있는 미국 국회의원들은 맨큐 의장을 맹렬히 비난하고 있다. 미국에서 보호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하는 모습이 심상찮다.

이세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