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V시대명음반>다니엘 바렌보임 베토벤 교향곡 합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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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인류가 낳은 위대한 선율.』 호사가들은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을 가리켜 이렇게 불렀다.있을지도 모르는 외계의 생명체들을향해 쏘아올린 우주선에도 인류의 소망을 담은 이 교향곡의 멜로디가 실려있었다던가.언제부턴가 세모만 되면 마지막 악장 「환희의 송가」가 방송 과 연주회장에서 울려퍼진다.송가(頌歌)를 송가(送歌)로 이해한 것일까.또 한해를 마감하고 보낸다는 뜻에서「환희의 송가」란 이름은 얼마나 적절한가.장대한 합창으로 이어지는 바리톤의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오,친구여.이런 음들은 아니오.이보다 더욱 기쁨에 넘친 선율을 노래합시다.』 과거로부터 벗어나 끊임없는 자기모색을 거듭했던 베토벤은 마지막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에서까지 다시 태어나는 기쁨을 갈구한다.송구영신의 마음가짐으로 이 음악을 대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다니엘 바렌보임.적어도 음악에서 다재다능함을 논할 때 번스타인 이래 단연 돋보이는 존재다.말도 많고 탈도 많은 바스티유 오페라를 정명훈에게 넘겨주고 시카고 심포니의 터줏대감으로 자리잡은 뒤 그는 눈부신 성장가도를 달려왔다.그동안 바그너와 브루크너.베토벤의 교향곡과 오페라에서 괄목할만한 결실을 보았다.
여기 소개하는 『합창』교향곡은 92년 베를린에서 녹음한 「새롭고도 오래된 해석」이다.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와 존 엘리엇 가디너가 비슷한 시기에 베토벤 교향곡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는 동안 바렌보임은 전통에 충실한 「베를린식」베토벤을 완성했다.바렌보임만큼 어둡고 불안하게 1악장을 여는 지휘자도 없었을 것이다.그 불안감은 베토벤이 전통적인 조성에 변화를 시도한 욕망에근거한다.바렌보임의 연주를 가리켜 전통적이면서도 새롭다고 정의하는 것도 바로 이런 욕망을 잘 지 펴냈기 때문이다.뜨겁고 화려하며 굴곡이 심한 1시간 15분이 흐르고 나면 우리의 심신은땀에 젖는다.
최근 인터뷰에서 바렌보임은 이렇게 답했다.『음악이요?어려운 것도,쉬운 것도 아니죠.살아가는 한 방법(a way of life)일 뿐입니다.』 지난 한해를 정신없이 살아온 여정이 그의이런 잠언과 『합창』교향곡에서 새롭게 되새겨진다.
〈Er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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