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어린이 책] 나비잠·노루잠·말뚝잠·사로자다 … 오늘 어떤 잠 잤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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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순 우리말 사전 - 김선철·김원희 글, 김순효 그림, 열린박물관, 272쪽, 2만5000원, 초·중학생

우리말의 감칠맛을 흠뻑 누릴 수 있는 단어를 가려 뽑은 책이다. 국립국어원 연구원인 저자들이 우리말 의미를 잘 표현하고 있는 고유어 4005개를 골라 싣고, 그중 200개 어휘를 따로 추려 자세한 설명을 붙였다.

단어 하나하나에 우리 민족의 섬세하고 풍부한 감성과 다채로운 표현력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잠’을 뜻하는 표현만 봐도 그렇다. 갓난 아이가 두 팔을 위로 벌리고 자는 모습은 ‘나비잠’, 깊이 들지 못하고 자꾸 놀라 깨는 잠은 ‘노루잠’, 새우처럼 등을 구부리고 자는 잠은 ‘새우잠’, 꼿꼿이 앉은 채로 자는 잠은 ‘말뚝잠’이란다. 또 걱정거리나 염려 때문에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자는 둥 마는 둥 하는 것을 두고 ‘사로자다’라 한다니, 말만 들어도 잠자는 모습이 눈에 그린 듯 선하다. 그뿐인가. 머리 모양을 나타내는 단어는 가랑머리·고머리·귀엣머리·더벅머리·모두머리·상고머리·어여머리·얹은머리 등 서른 가지에 달하고, 웃음의 종류도 겉웃음·너스레웃음·너털웃음·뭇웃음·염소웃음·코웃음 등 다양하다.

어감 자체가 재미있는 단어도 많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마구 해치우는 모양을 뜻하는 ‘휘뚜루마뚜루’, 뜻밖의 일로 놀라서 허둥지둥한다는 뜻의 ‘덴겁하다’ 등은 소리내 읽기만 해도 우리 민족의 해학이 배어 나온다.

초·중학생용 책이지만, ‘하분하분’이나 ‘몽따다’같이 어른들도 갸웃거릴 단어가 적잖다. 한자어 중심의 언어생활이 빚은 후유증일 터다. 하지만 ‘방금 쪄낸 물고구마가 하분하분해서 껍질이 잘 벗겨진다’ ‘집에 가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몽따고 더 묻지 않았다’ 등 예문을 보면 그 뜻을 미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하분하분’은 물기가 있는 물건이 조금 연하고 무른 모양을 뜻하며, ‘몽따다’는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모른 체할 때 쓰는 말이다).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새삼 일깨워주는 고마운 책이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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