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진출업체 철수 줄잇는다-사전준비 미흡.현지적응 실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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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상장 의류업체인 ㈜영우통상은 최근 긴급이사회를 열고 파나마 현지법인과 도미니카 현지공장의 폐쇄를 결의했다.증시공시를 통해밝힌 폐쇄이유는 현지 영업환경변화에 따른 채산성 악화.6년넘게현지법인.공장에 2백40만달러를 투자했으나 투 자금액을 한푼도건지지 못한 채 철수해야만 했다.최근 수년간의 누적적자가 이미투자한 자본금을 잠식,더이상 버텨내기 어렵다고 결론지은 것이다.국내 인건비상승 부담을 덜기 위해 지난 88년 일찌감치 중남미에 진출한 이 회사는 진출초기 2~3년간 현지법인을 통해 짭짤한 투자과실을 거두기도 했다.
임금이 국내의 절반이하로 싼데다 미국의 카리브해 연안지역국가(CBI)에 대한 무관세혜택으로 생산한 제품을 전량 미국에 수출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이처럼 좋았던 영업환경이 90년대들어 급변하기 시작했다. 중국등 개발도상국가의 봉제업체들이 경쟁적으로 몰려들면서 현지임금이 급등을 거듭한 반면 대미(對美)수출단가는 과당경쟁으로 하루가 다르게 떨어졌다.미국의 경기불황으로 수출규모도 해마다 격감했다.
게다가 미국등 북미국가들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하면서 CBI에 대한 무역특혜도 점차 줄였다.
해외직접투자에 대한 규제완화와 국제화.세계화 바람,그리고 국내보다 싼 임금과 수출장벽의 우회돌파라는 메리트(장점)에 끌려해외로 진출하는 국내기업들은 갈수록 늘고 있다.그러나 그 이면에는 이처럼 사전준비의 미흡과 현지법규.제도변화 ,임금급등.노사분규,현지적응 실패등으로 좌절을 맛보는 기업들도 함께 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사정은 중소기업인 영우통상의 경우에만 그치지 않고 있다. 삼성물산은 최근 과테말라의 숙녀복공장을 폐쇄한데 이어 중남미지역에 세운 다른 현지출자법인들도 함께 진출한 중소협력업체들에 지분을 양도하고 철수를 준비하고 있다.
무역진흥공사의 과테말라지사에 따르면 이곳에 진출했던 외국기업가운데 올 하반기에 폐업한 곳이 37社인데 이들 대부분이 한국제조업체라는 것이다.
현지업체들은 과테말라.온두라스.파나마.도미니카등 CBI에 진출한 한국기업가운데 철수를 준비중인 업체까지 합치면 진출기업의절반에 이르는 1백여개에 이른다고 전하고 있다.
중남미지역뿐만이 아니다.인도네시아는 중화학등 일부 경쟁력있는장치산업을 제외하곤 90년대 이후 신발.완구.봉제.경공업등 거의 대부분의 업체들이 생산설비를 대폭 축소하거나 철수한 상태다. 한때 신발 생산설비의 대부분을 인도네시아로 옮겼던 국제상사가 현지 인건비 급등과 심각한 인플레를 견디지 못하고 생산라인을 다시 철거한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韓.中수교이후 비교적 국내 업체들의 진출역사가 짧은 중국의 경우도 최근들어 임금상승과 증치세(부가가치세)부과등 예상치 못한 제도변화로 이미 철수했거나 베트남등 인접국가로 생산기지 이전을 검토중인 업체가 늘고 있다.
한국은행 해외투자과에 따르면 11월말 현재 중국진출 업체들 가운데 자본철수 신고사례는 자전거방울 제조업체인 마른핸즈 1社에 불과하지만,도산 또는 생산설비를 타국으로 이전하고도 신고를하지않은 업체도 수십개에 달한다는 것이다.밖으로 나가는 기업수는 제대로 집계되고 있지만 철수업체는 대부분 소리없이 들어오고있기 때문이다.
〈林峯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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