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 사교육대책 성공하려면] 中. 수준별 학습 교육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지난해 중단했는데 정말 해야 하나. "

지난해 영어와 수학의 수준별 이동수업을 운영했던 서울 K고는 교육인적자원부가 발표한 사교육비 경감대책을 보고 고민에 빠졌다.

K고는 올해 수준별 이동수업을 하지 않으려 했다. 대신 한 학급에서 분단별로 수준을 나누려 했다. 이 학교 교사들은 "심화반.보충반으로 나누다 보니 보충반 학생들의 성적이 더 안 좋아지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열등감에 빠져 자포자기하는 학생도 생겨나 더 이상 수준별 이동수업을 하기 힘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교육부의 발표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K고 관계자는 "교육부가 강경하게 나온다면 다시 할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다른 학교들도 동요하긴 마찬가지다. 새 학기가 열흘도 안 남았는데 그동안 어떻게 수준별 교재를 제작하며, 평가방법을 개발하느냐는 불만도 나왔다.

◇현장의 어려움=수준별 이동수업을 하고 있는 서울 성심여고의 노창일 교감은 "도입 후 3년 동안 교재 개발과 적절한 교수학습법을 찾는 데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며 "적절한 교재 개발과 효과적인 교수학습법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준비가 갖춰지지 않은 채 무리하게 시행하면 탈이 날 수 있다는 충고다.

실제로 교육부가 1990년대 후반부터 전국에 보급했던 '열린 교육'도 현장에서 혼란을 초래했다. 지시와 공문을 통해 일제히 시작하다 보니 '콩나물 교실'에서 그룹별 토론 수업을 하는 촌극이 벌어졌던 것이다.

자율 보충학습도 쉽지 않다. 입시나 내신과 관련이 없는 보충학습을 할 경우 학부형이 반대할 수 있다. 학교 수업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것도 과제다.

모 중학교 교사 劉모씨는 "원어민 영어회화 수업을 열어도 학부모들이 학교를 믿지 못해 학원에 보낸다"면서 "학생 수가 부족해 폐강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교사가 성공의 관건=안병영 교육부총리는 "수준별 이동수업이 성공한 학교는 교장의 리더십이 뛰어나고 교사의 참여열기가 높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모범사례로 꼽히는 논산 대건고에서는 영어교재 개발이 한창이다. 7차 교육과정의 영어 교과서가 회화 위주로 구성돼 기존 교재로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 학교 박용서 교감은 "수준별 수업을 하기 위해 교사들은 일반 수업에 비해 서너배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면서 "교사의 열의뿐 아니라 학교 차원의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충학습이 정착되는 데도 교사의 노력이 절대적이다. 시범학교인 서울 신목중은 지난해 11월부터 최근까지 서너번의 학부모 세미나를 열었다. 학부모의 관심을 끌고 이해를 돕기 위해서다. 교사들은 방학 중에도 보충학습을 하고 매달 학생 개개인의 성과표를 작성해 학부모들에게 보내줘야 한다.

유기종 교감은 "교사들의 업무 부담이 커 보조교사 채용 등으로 부담을 줄이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현옥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