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서울 온 항공사진가 아르튀스-베르트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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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하늘의 시인’ 으로 불리는 프랑스 사진작가 얀 아르튀스-베르트랑(58)이 서울에 왔다. 지구촌 어디서나 그랬듯이 서울에서도 항공촬영을 했다. 그의 필름에는 뒤죽박죽으로 솟아 있는 건물과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혼잡스러움이 담겼다.

“하늘로 다녔기에 망정이지 땅으로 움직였으면 아무 일도 못할 뻔 했다.”

19일 기자회견장에 약속시간보다 30분 늦게 나타난 그는 애교있는 변명으로 말문을 열었다. 17일 방문해 이튿날부터 산림청 헬기를 타고 서울의 ‘초상’을 찍다 잠시 짬을 낸 것이었다.

세계 곳곳을 누비며 찍은 항공 사진과 그에 덧붙인 에세이를 엮은 책 '발견 하늘에서 본 지구 366'(새물결, 원제 'reflections on our earth')의 저자인 그는 "서울은 급성장한 도시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먼지가 많아 도시 전체를 촬영하기는 힘들었다. 하늘에서 본 서울은 여러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계획적으로 개발된 도시가 아닌 것이 확연히 드러났고, 경제 성장에 따라 도시가 팽창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날까지 이틀 동안 서울 전역을 떠다니며 뷰 파인더를 통해 본 여의도 빌딩 숲, 신림동 달동네, 경복궁 주변을 포함한 4대문 안 도심의 풍경에 대한 소감은 그렇게 이어졌다.

그는 그러면서 "10년 동안 하늘에서 땅을 바라보면서 인간은 자연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울이라는 도시 역시 자연의 일부분이다. 내 사진은 지속 가능한 발전 또는 개발이라는 메시지를 표현하고 있다. 이번에 찍은 서울의 모습에도 많은 의미가 담길 것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해석은 과학자.도시계획 관련자.경제학자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아프리카에서 기구를 띄워 동물 사진을 찍어온 아르튀스-베르트랑은 1994년부터 하늘에서 지구의 구석구석을 촬영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1백50여개국에서 헬기와 경비행기를 타고 촬영 작업을 해왔다. 주로 자연과 인간, 개발과 환경을 대비하는 그의 사진집은 유럽에서만 2백만권 이상 팔렸으며 파리.런던 등 주요 도시에서 전시회가 열려 지구촌 수천만명이 그의 사진을 관람했다. 인도에서는 애써 촬영한 사진의 80%를 군사기밀이 담겼다는 이유로 군당국에 빼앗기는 등 곳곳에서 수난을 겪기도 했다.

이번 서울에서의 작업은 청와대.국방부 등의 특별 허가로 청와대에서 불과 수km 떨어진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으며, 오는 5월 3일부터 서울 코엑스 전시장에서 열리는 '하늘에서 본 지구'전시회를 통해 사진들이 공개된다. 그는 "북한의 평양 상공을 한번 꼭 촬영하고 싶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남북한을 가로지르는 비무장지대도 필름에 담고 싶다"고 말했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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