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 같은 조연' 박근혜 동반자 대접 받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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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투표를 하기 위해 19일 대구시 달성군 화원고등학교에 들어서고 있다. [대구=뉴시스]

19일 낮 12시, 이른 점심 식사를 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서울 삼성동 자택을 나섰다. 그는 자신의 검은색 뉴체어맨 승용차에 올랐다. 17대 대선에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주민등록상 주소지인 지역구(대구 달성)로 가는 길이었다.

그는 오후 2시40분쯤 달성군 화원읍 화원고교에 마련된 투표소에 도착했다. 지역주민 100여 명과 대구시당 위원장인 박종근 의원, 이해봉.주성영 의원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투표를 마치고 나온 박 전 대표는 '결과가 어떻게 될 것 같은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번엔 한나라당이 꼭 정권 교체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 박 전 대표의 힘이 컸다고 보는데…'라는 물음에는 "당원으로서 노력했다"고 답했다.

귀경길에 오르는 박 전 대표를 향해 주민들은 "다음 대통령은 박근혜"라고 외치며 박수를 쳤다. 그는 "나중에 와서 또 뵙겠다"고 화답했다. 박 전 대표는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보좌진에게 시간대별 투표율을 물으며 선거에 대한 관심을 나타냈다고 한다.

당 일각에선 "박 전 대표가 이번 대선에서 직접 뛰지 않았지만 주연 같은 조연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박 전 대표는 선거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경선 승복 연설에서 밝힌 자신의 원칙을 지켰다. 이회창 무소속 후보의 출마에 대해 "정도(正道)가 아니다"며 이명박 후보의 손을 들어줬고, 선거운동 기간엔 전국을 돌며 지원유세를 했다. 선거 전날까지 세 번이나 자신의 집으로 찾아온 이회창 후보를 한 차례도 만나지 않았다. 행여 이명박 후보 지지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박 전 대표에게 '집권 후 동반자 관계'를 선언한 바 있다. 그러나 당선자 측은 감사와 아쉬움의 감정도 드러내고 있다. 이 당선자의 한 측근은 "이회창 후보 공격과 지원유세는 고맙지만 여러 차례 요청한 TV 찬조연설이나 합동유세에 응하지 않은 건 안타깝다. 경선 막판에 터진 BBK 동영상 문제에 대해서도 화끈한 지원 발언을 해 주길 바랐다"고 말했다.

당내에선 "박 전 대표 앞에 시련의 세월이 놓여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박 전 대표 측이 아무리 "선거 승리의 1등 공신"이라고 주장해도 이명박 당선자 측이 이를 100% 인정할 리 없는 데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양측 진영 간에 '공천 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 대선 직전 입당한 정몽준 의원이 박 전 대표의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 전 대표 측은 "이명박 후보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며 "그런데도 이 후보 측이 우리 측 인사들을 향해 칼을 휘두른다면 박 전 대표도 가만 있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국 이명박 당선자가 박 전 대표를 얼마나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느냐에 따라 양측의 협력 수위가 달라질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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