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논단>옐친의 체첸 도박-유혈종식 빠를수록 좋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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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러시아로부터 이탈한 작은 공화국인 체첸이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과 그를 추종하는 개혁세력을 심각한 위험으로 빠뜨리고 있다. 체첸의 일방적 독립선언 이후 3년동안 이어져온 폭동은 더이상 용납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체첸의 도전에 대한 단호한 조치가 실패할 경우 적어도 두가지의 비극적 결과가 예상된다. 우선 비슷한 처지에 놓인 주변국들을 고무시켜 러시아연방의 붕괴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두번째는 정치적으로 극우 민족주의자들의 강력한 반발을 부추겨옐친 정부가 전복될 수 있다.
워싱턴은 물론 옐친 자신도 이러한 시나리오를 원하지 않는다.
정적에 포위된 옐친은 반란군을 무력진압하는 행위가 위험한 도박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독립욕망에 굶주린 사람들에게 그러한 자극이 분노에 찬 반항과테러리즘을 촉발시켜 러시아를 제2의 아프가니스탄으로 빠뜨릴 것이다.설사 옐친이 성난 민족주의자들과 국지전 참여로 영향력 회복을 노리는 군부를 설득한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계속되는 전쟁상태에 지친 러시아 국민들로부터 퇴임 압력을 받을수도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워싱턴은 옐친에게 체첸을 무너뜨리기보다 갈등해소를 위한 협상의 문을 열라고 은밀히 권유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체첸에도 정치적 자주권이 부여되는 것이다.
91년 모스크바에서 발생한 보수파의 쿠데타 직후 구 소련 공군장군이던 조하르 두다예프는 석유가 풍부하고 인구 1백30만명인 체첸의 독립을 공표했다.1년뒤 옐친이 러시아의 지배를 회복하려 첫 무력해결을 시도했을 당시 의회는 정치적 해결을 요구하며 시간을 끌었다.
그러나 이제 옐친은 두다예프를 무너뜨리기 위해 무력사용도 서슴지 않는 결심을 확고히 한것으로 드러났다.
지난주 옐친은 대규모의 러시아 군대를 체첸공화국 변경에 집결시킨뒤 실패한 쿠데타를 지원하기도 했다.또한 지난 몇주동안 줄기차게 무장병력에 체첸수도 그로즈니로의 진격을 독려했다.
옐친의 결단은 모스크바의 진보세력으로부터 격렬한 항의를 받았으나 현재까지는 더욱 단호한 외교정책을 선호하는 다수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인종차별에 과거 역사가 겹쳐 러시아인들 상당수는 체첸에 대해 불쾌한 감정을 갖고 있는 실정이다 .체첸인들은무력을 앞세워 매점매석등을 일삼아 모스크바의 시장을 유린하고 있다. 두다예프 정권은 허장성세의 도둑정권이다.이들은 진짜 체첸 민족주의자들로부터 권력을 빼앗아 타락한 전리품을 챙기고 있다. 인종의 용광로인 카프카스 산맥내 흑해.카스피아해 사이에 자리한 이 공화국은 쉽사리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옐친의 곤경에 대해 워싱턴은 지원은 할 수 없고 동정을 보낼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그의 임무는 가능한한 빨리 두다예프를 권좌에서 밀어내 유혈사태를 종식하는 일이다.그렇지 못하고 실패할 경우 그는 러시아 민족주의자와 군부의 볼모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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