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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이제는실천이다>6.부끄러운 한국방문의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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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 나라의「세계화」를 총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있다.바로 그 나라를 찾는 관광객이다.
올 여름 우리나라 지방도시를 고속버스로 여행했던 독일인 관광객 슈트렉(42)씨는 여행중 겪은 불쾌한 기억을 한국관광공사 불편.불만 신고센터에 다음과 같이 남겨놓고 떠났다.
『7월22일 오후 전주에 도착,화장실을 찾았으나 너무 더럽고냄새가 심해 도저히 일을 볼 수 없었다.이틀 후 들른 서울 고속버스 터미널의 화장실도 바닥이 오물로 질척거렸고 낙서투성이였다.』 우리나라의 관광현실을 보여주는 부끄러운 삽화의 하나다.
94 한국방문의 해-.
「굴뚝 없는 산업」이라 불리는 관광진흥을 위해 추진된 이 사업이 외국인 관광객들에 대한 허술한 수용여건으로 갈지(之)자 걸음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 눈에는 사소한 일도 외국인에게는 촌스럽고 낙후된 인상으로 비쳐 관광산업의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사례는 허다하다.
질낮은 호텔 서비스 수준은 외국인에게 가장 손꼽히는 불만사항이다. 업무차 우리나라를 방문,지방 도시 특급호텔인 K호텔에 두달간 머물렀던 오스트리아인 피터(51)씨는『직원들이 기분에 따라 방 청소를 하고 그것도 단순히 침대를 정리하고 수건을 바꿔 거는 정도가 고작이다.명색이 특급 호텔인데도 방 정 리가 오후 6시에나 끝난다』고 불평했다.
지난 9월16일 서울강남 R호텔에 묵었던 일본인 마유미(26.여)씨는 투숙 수속때 영어를 하지 못하는 호텔 직원 때문에 몸짓으로 의사를 교환하던중 그 직원이 저속하고 부적절한 일본어를 떠듬거려 당황한 경험을 갖고 있다.
마유미씨는『벨보이는 개인 관광객이라며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고미혼이냐고 추근대기까지 해 한국인들에게 몹시 불쾌한 느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1급 이하 호텔의 서비스는 더욱 열악하다.
미국인 하버(46)씨는『서울영등포 M호텔에 묵었는데 전화를 걸어온 내친구에게 교환양이「그런 사람은 없다」고 말해 중요한 약속을 어기게됐다』고 분개했다.또 욕실에는 바퀴벌레가 기어다녔다고 투덜거렸다.
울산의 한 호텔은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출발해 안경이 깨진 영국인 브린씨로부터 변상요구를 받고 2백달러를 물어주겠다는 편지를 보내면서「이제 그만 줄이겠습니다」는 말을「Then,stopwriting」(이제 편지를 그만하라)로 보내 웃음거리가 된 적도 있다.
택시횡포도 외국인들에게 단골로 꼽히는 불만거리다.
〈金石基기자〉 서울외국인학교 교사인 루스(여.미국)씨는 친구와 함께 지난 9월19일저녁 김포공항에서 중형택시를 탄 뒤 운전기사에게 연희동까지 가자고 했다.
그런데 기사는 미터기를 꺾지 않은 채 출발했다.평소 8천원 거리임을 알고있는 루스씨는『미터기를 작동하라』고 요구했으나 기사는『1만원만 내라』며 거절했다.루스씨가 여러번 미터기 작동을요구하자 기사는 택시를 시속 1백40㎞ 이상으로 몹시 난폭하게몰며 담뱃재가 얼굴로 날아올 정도로 털어댔다.루스씨는『그나마 목적지에서 떨어진 곳에 우리를 내리게 해 차번호를 적으려 하자기사는 종이를 뺏어 찢어버린 뒤 차를 몰고 사라졌다』며 고개를저었다. 쇼핑을 둘러싼 외국인들의 불만도 적지않아 제품불량과 상품 강매행위,탁송지연,계약불이행등 갖가지 민원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인 미도코(38)씨는 지난해 말 서울에서 송이버섯을 구입,귀국해 포장을 뜯어보니 벌레먹은 송이와 신문지로 채워져 있어 우리 정부에 항의했고 미국인 체낵씨는 이태원 S양복점에 2천달러어치의 옷과 신발을 주문했으나 배달된 물품이 주문 내용과 다른데다 일부는 규격에 맞지않아 신고하기도 했다.
눈앞의 작은 이익에 집착한 얄팍한 상술은 외국인들로 하여금 한국을 외면케 해 결국은 큰 것을 잃는 愚가 되풀이 되고 있는것이다. 세계의 변화와는 담을 쌓은 듯한 이같은 여건으로 올들어 10월말까지 입국한 외국인 관광객은 2백96만명에 그쳐 4백만명이라는 당국의 유치 목표가 부끄럽게 된 상황이다.게다가 한국관광공사에 지난 10개월동안 접수된 외국인들의 불편. 불만내용은 7백29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2%나 증가해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관광여건도 우리사회의 세계화의 중요한 지표라고 볼 때 외국인관광객들의 불평과 힐난은 사회 곳곳의「세계화」외침에 실천이 뒤따르지 않고 있음을 확인해 준다.
관광을 살리기 위해서는 해외홍보등을 통한 외국인 관광객의 신규 유치도 중요하지만 적어도 온 손님은 내쫓지 않는 수준으로 시민과 관광종사자들이 재무장해야 한다.
손대현(孫大鉉)한양대교수는『종사자들의 서비스를 바탕으로 하는관광업의 특성으로 인해 정부의 지도감독이나 정책지원만으로 관광불편 근절을 기대할 수는 없다』며『관광업계의 자율적인 서비스 개선과 함께 언어.숙박.교통.도로.쇼핑.국민의식 등 사회 모든부문에 걸친 국제화와 선진화가 이뤄져야 이러한 문제가 근원적으로 해결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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