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서평>"기술정보화시대의 인간문제"한국동양철학외 엮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이 책은 한 사람의 글이 아니라 모두 13명의 교수가 쓴 13편의 논문을 한데 묶어 만든 책이다.그러므로 이 책을 구성하는 개별 논문들은 각각 독립된 주제로 쓰인 것들이다.그러면서도하나의 단행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기술 정보화 시대의 인간문제를 집필의 대전제로 삼았기 때문이다.
한국동양철학회는 시대적 고민에 동참하고 「현대의 동양철학」을지향한다는 취지에서 지난해 가을 이 책의 제목과 같은 주제 아래 학술회의를 개최한 적이 있다.여기 수록된 논문들은 그때 발표된 것을 모은 것이다.개별 논문이면서도 각각 큰 테마와 연관성을 갖는 이유는 이와 같은 점에서 찾아진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특징은 도래할 정보화사회와 그 시대상에 대한 동양철학적 진단과 나름의 처방에서 찾아진다.어찌보면 현대과학문명에 대한 동양철학의 능동적 참여를 선언하는 감이 있다.
지금은 「말현대(末現代)」의 시대를 가고 있지만 동양철학은 「현대」와도 잘 융합되지 못한 채 고고성만 지킨 감이 없지 않았던 것인데,이를 계기로 한국동양철학은 「시대」와 「사회」로 영역을 적극 확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
철학이 반드시 어떤 시대와 사회에 유용한 원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무를 가질 필요는 없다.그러나 그 시대가 안고 있는 인간의 문제까지 외면한다면,특히 이러한 태도는 동양철학의 본분이아니다. 한국동양철학회가 서양과학문명의 진보에 대해 침묵하는 피동의 자세에서 벗어나 학문적 접근방법을 통해 그것에 대한 자가적 견해를 피력해보고 인간문제 해결을 위한 동양적 예지의 재창출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은 동양철학의 본래분상(本來分上 )과여일(如一)한 것이다.그러나 이 책은 이러한 긍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과제를 시사한다.
첫째,동양철학(儒家)은 인간과 만물이 분리되지 않는 유기체적자연관을 가지고 있다.이 유기체적 자연관의 원리가 서양을 지배해온 기계론적 자연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방법론을 보다 자세하게 제시하는 노력이 아쉽다.
둘째는 정보화시대의 유교다.유교는 생명에 대한 외경의식과 만사여응하는 마음의 주체성을 존중한다.그러나 이 책의 한 필자는다음과 같은 물음을 제시한다.
유교는 정보화사회가 필요로 하는 과정지식과 구체적으로 어떠한상응관계에 있으며,정보화의 과정에서 가치관이 충돌할 때 어떠한처방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
이 책의 논문들은 동양철학과 서양과학 사이를 조명하면서 대체로 조화와 중용의 논리를 채택하고 있다.그러나 기술 정보화 시대의 인간문제를 중심으로 놓고 볼 때 위의 문제들은 동양철학계가 이제 새로이 풀어야 할 과제가 아닌가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