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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도 뼈 깎는 자성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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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노무현 대통령이 중앙일보와의 신년 대담을 통해 언론, 특히 신문에 대한 개인적인 대응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악의적인 공격이나 정책에 대한 잘못된 보도에 대해서는 대응하겠다고 못박았다. 지난해 내내 계속돼온 정부와 언론의 힘겨루기식 긴장 관계가 원만하게 봉합되길 바란다.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빚어졌던 정부와 언론 간의 난기류는 많은 사람에게 걱정거리를 안겨 주었다. 국가 운영의 핵심인 정부와 언론의 대결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盧대통령의 이날 언급으로 정부와 언론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은 셈이다.

이쯤에서 언론은 김영삼.김대중, 그리고 노무현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비슷한 일이 왜 되풀이되는지 면밀하게 성찰하고 진단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해야 할 시점에 온 듯하다. 시장도 변하고, 언론 환경도 변했는데 과거의 향수에 젖어 있다면 시장은 그들을 외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언론, 특히 메이저 신문들은 지난 40여년 동안 군사독재 정권과 싸우면서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동시에 군사정권과 유착하거나 이면으로 협력하면서 양적인 성장과 정치.사회적 위치를 공고히 하는 2중의 전과를 올렸다. 이런 과정에 언론이 정치세력의 한 부분으로 편입되었고 정치적 후원주의로 빠져들었다.

이런 언론의 미묘하고 기형적인 구조를 바꾸기 위해 정당한 절차에 의해 뽑힌 민간인 정부들은 여러 가지 '언론 정책'을 시행했지만 정치적인 이해나 태생적 한계 때문에 완전한 매듭을 짓지 못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언론기업 뒤에 숨겨진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드러났고 많은 사람은 '개혁의 대상'이라고 언론에 손가락질을 하게 되었다. 물론 신뢰성에도 큰 흠집이 났다.

언론의 영향력은 바닥을 향하기 시작했다. 이런 추세는 1997년과 2002년 두 차례의 대통령선거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다. 기를 쓰고 특정 후보를 지원했던 노력은 시장에서 철저히 외면당했다. 대신 인터넷 등 대안 언론이나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돌발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엄청난 변화가 내외에서 몰려들었지만 언론은 이를 외면하고 오만과 고집으로 맞서 지원 세력보다는 적을 더 많이 만들었다.

시대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한 언론은 국민을 가르치고 훈계하는 일에 매달렸고, 이를 본연의 임무인 것처럼 내세우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안을 자기 구미에 따라 흑백으로 나누어 극단주의를 만들어 냈다. 획일화된 가치만을 강조했기 때문에 다른 의견이 들어설 수 있는 기회를 봉쇄하고 다양한 의견의 장을 만드는 데 실패하기도 했다. 본말이 전도된 기사, 사실 확인이나 전달에 미흡한 기사, 표피적인 기사가 요란스러운 치장과 함께 지면을 채우기도 했다. 더구나 언론의 배타성과 오만함은 정치권력을 누가 장악하느냐로 옮겨져 자기들의 편에는 전폭적 지지를, 반대쪽엔 재갈을 물렸다. 이 과정에서 게임의 규칙이나 합리적인 의사소통 등 민주 언론이 추구해야 할 규범이나 원칙은 무시되거나 증발되었다.

이제 언론시장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제도언론에 대한 의존성도 현저히 떨어졌다. 정보나 뉴스를 얻기 위한 대체 수단이 별처럼 많이 개발되어 우리 생활에 들어와 있다. 게다가 국민의 의식수준도 한층 업그레이드돼 언론을 비판하고 평가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언론의 위기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어떻게 이 위기를 타개할 것인가? 처절한 투쟁이다. 자기혁신과 성숙한 언론을 위한 뼈를 깎는 투쟁을 해야 한다. 정치투쟁은 이제 과감하게 접고 언론 본령으로 돌아가기 위한 본질적인 변혁을 꾀해야 한다는 것이 지난 1년이 우리에게 준 교훈이다. 공룡이 왜 멸종되었는지 진지하게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박영상 한양대 교수.신문방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