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수능특강 사이트 연 최인호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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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제가 종철이 친구였기 때문에 이런 일도 벌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무료 수능 특강 사이트 '티치미(www.teachme.co.kr)'의 운영자 최인호(崔仁鎬.39)씨의 입에서 뜻밖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지난 1월 초 문을 연 티치미는 획기적인 운영방식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사이트. 서울 대치동 학원가의 일급 강사들이 매일 업데이트하는 영어.수학 강의의 동영상 콘텐츠를 회원으로 가입하지 않고도 무료로 내려받아 볼 수 있는 곳이다.

기획 의도를 설명하던 崔씨가 불쑥 떠올린 이름. 그건 崔씨가 한시도 잊은 적이 없는 친구, 바로 1987년 6월항쟁의 기폭제가 된 고(故) 박종철씨였다.

서울대 84학번 동기인 朴씨(언어학과)와 崔씨(철학과)는 1학년 때부터 이념서클 '대학문화연구회'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자취방도 같이 썼다. 그런 친구가 물고문 끝에 숨지자 崔씨는 큰 충격을 받았다. 졸업 후 몇몇 동료들과 출판 운동에 뛰어들어 90년 '박종철출판사'를 차렸다.

추모사업의 첫 과제는 사회주의의 교과서라는 '마르크스 엥겔스 저작 선집'의 번역. 崔씨는 동료들과 함께 번역을 시작해 7년 만인 97년에 모두 6권을 번역해냈다. 하지만 그동안 동유럽과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면서 사회주의는 '한물 간 사상' 취급을 받게 됐다. 당장 생계가 급했다.

"그제서야 제 자신과 가정을 돌아봤어요. 거의 거미줄을 칠 정도더군요. 특히 어머니께 죄송했어요. 홀몸으로 어렵게 서울대까지 보내놓은 자식이 졸업 후 7년이 지나도록 돈 한푼 벌어다 준 적 없으니…."

일반 회사에 취직하기엔 늦은 나이였다. 그런 그를 대치동 입시학원의 유명 영어 강사로 만들어준 것은 아이로니컬하게도 마르크스였다. 독어 원본 외에 참고로 봤던 수천쪽의 영어판본 덕분에 읽기와 쓰기에는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한동안 돈 버는 맛에 취해 있었죠. 작은 중소기업을 하나 차릴 정도로 벌었어요. 그러다 문득 깨보니 이게 아니더라고요. 어디에 사느냐, 돈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교육기회에 엄청난 차이가 있는 사회, 내가 비판해온 사회 불평등 구조에 내 자신이 기여하고 있구나 하는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인터넷이 해결을 위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99년 무료 영어교육 사이트 '데일리잉글리시닷컴(www.dailyenglish.com)'을 만든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이번에 대학 동창들과 뜻을 모아 '티치미'를 개설했다. 1년간 10억원은 쓸 각오라고 했다.

"다른 강사들과 공공기관의 동참 문의가 잇따르고 있어요. 여기에 EBS와 강남구청의 인터넷 강의 계획안이 제대로 실행된다면 인터넷에서만큼은 완벽하게 평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겁니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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