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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삼칼럼>정부기능-제3의 선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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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다른 형태의 조직에 비해 ( )이 앞서나가는 결정적 이유는기술적 우월성 때문이다.정확성,신속성,명확성,물적.인적 비용 축소등의 요구를 ( )은 적절하게 충족시키고 있다.」 「관료조직」과「기업」이란 두 개의 보기를 주고 ( )속에 이 가운데 하나를 골라 넣으라는 시험문제를 낸다면 요즘 사람이라면 열이면열 「기업」을 답으로 고를 것이다.또 그것이 정답일 것이다.그러나 막스 베버의 원래 문장에 나오는 낱말은 「기업」이 아니라「관료조직」이다.
세상이 이처럼 변했다.불과 10년,20년전까지만해도 사회의 견인차임을 누구나 의심치 않았던 관료조직은 거추장스럽고 철지난옷처럼 되어버렸고 그에 대한 수술과 매질이 세계적인 유행이 되고 있다.아니 단지 세계적 유행이고 흐름이라서■ 아니라 그러지않고서는 그 사회가 살아남기조차 어려울만큼 상황이 변해버렸다.
그래서 정부가 지난 토요일 오후에 기습적으로 단행한 행정조직개편은「또 하나의 깜짝 쇼」라는 야당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각계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그러나 모처럼의 대대적인 조직축소가 미국 레이건정부가 그러했던 것처럼 단지 정부조 직과 사업 그리고 공무원을 잘라내는데 그쳐버린다면 레이건정부의 실패를 답습하는 결과밖에는 얻지 못할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행정개혁에 이론적 기틀을 제공했다는 데이비드 오스본과 테드 게블러는 『정부혁신의 길』(Reinventing Goverment.삼성경제연구원 간행)에서 정부의 체중을 빼려면 적게 먹고 운동을 많이 해야지 무턱대고 예산과 조직을 잘라버리는 것은 살을 뺀다고 손가락.발가락을 잘라버리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세금을 올려 정부지출을 늘리는 식의 전통적인 민주당정책 역시 비효율적임이 증명되었다.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들이 제시하고 있는 것은 「제3의 선택」이다.
제2의 레이거노믹스도,제2의 뉴딜도 낡고 버려야 할 정책이라는 것이다.해결책은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의 선택에 있는 것이아니라 행정운용 방식을 새롭게 바꾸는데 있다는 것이다.즉 관 료적 조직을 기업가적 조직으로 바꿔 행정운용방식을 혁신하는데서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따라 앨 고어부통령이 이끄는 미국행정개혁팀은 첫째 불필요한 절차와 규제의 폐지,둘째 고객우선주의,셋째 기업문화도입을 통한 공무원자극,넷째 각종 특혜의 폐지등 기본의 중시등 4가지원칙을 밝히고 단계적으로 행정개혁을 진행시키고 있다.
과연 우리의 행정개혁에도 이러한 철학과 원칙이 명확히 설정돼있는 것일까.갑자기 대폭적인 행정조직개편안이 먼저 튀어나온 것이라 정부의 새로운 구상이 어떤데 바탕을 둔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세계화」라는 개념이 제시되었기는 하 나 이는 너무도 단순하고 막연하며 추상적인 것이어서 궁금증에 대한 답이 되기 어렵다.
이번 조직개편안의 갑작스런 발표는 공직사회의 동요와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이해한다 하더라도 이 시점에서는 국가경영철학과 방향에 대한 상세한 정부의 설명이 필요하다.그래야개편안에 대한 올바른 수정도 가능하고 잇따라 단 행될 지방행정조직의 개편방안에도 중지(衆智)를 모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정부의 행정조직개편이 단순히「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데만 기초해 있다면 그것은 너무도 단순한 발상일 것이다.변화된 상황에 따라 정부의 역할과 기능은 조정되어 야 하고 불필요한 조직도 털어내야 하겠지만 상황이 변했다고 정부의 역할과 기능자체가 불필요해진 것은 아닐 것이다.다만 이젠 어떻게 하는 것이좋으냐 하는 새로운 역할과 기능의 정립이 필요해졌을 뿐이다.
***衆智 공개적 모을때 우리의 행정개혁 역시 미국처럼 제3의 길,제3의 선택으로 나갈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어떤 구상이든 정부가 상세한 내용을 밝히는 것이 현 시점에서 중요하다.국가경영의 틀을 바꾸는 작업이 내내 비공개리에 폭탄선언하듯 나오는 것은 바람 직하지 않다.지금 우리 사회는 그저 어안이 벙벙한 상태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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