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소변 이용 건강요법, 학문적으로 밝혔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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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데 나이가 있나요. 죽기 직전까지 해야 하는 게 공부 아닐까요."

손자.손녀뻘의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며 박사 학위를 취득한 80세의 김기일씨. 1925년생인 金씨는 20일 단국대 식품영양학과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는다.

함경남도가 고향인 金씨는 1945년 남한으로 내려와 54년 서울대 수의학과를 졸업했다. 91년 서울 구정중학교 과학주임으로 퇴임할 때까지 30여년간 교단을 지킨 金씨는 끊임없이 배우는 선생님이었다. 환갑 나이인 1986년엔 한양대에서 생물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이번에 박사가 된다.

金씨의 박사학위 논문은 일반인에겐 다소 생소한 '요료법(尿療法)'에 관한 것. 자신의 오줌을 받아 마시며 건강을 관리하는 민간요법의 하나다. 교단에서 은퇴한 뒤 건강에 관한 강의를 듣다가 우연히 요료법을 접한 金씨는 스스로 이 요법을 체험한 뒤로 30년간 자신을 괴롭혔던 무좀이 사라지고 피부가 깨끗해지는 현상을 경험했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체험을 학문적으로 규명하고 싶었던 金씨는 75세의 나이로 2000년 3월 단국대 식품영양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이후 4년간 매일 12시간씩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도서관과 실험실을 오가는 만학도 생활을 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 집에서 서울 용산구의 단국대 캠퍼스까지는 전철로 왕복 4시간이 걸린다. 전철 안에서도 책을 봐가며 연구에 매달린 끝에 '요료법이 고혈압과 혈청지질에 미치는 영향'이란 논문을 써냈다. 논문은 정상인과 고혈압 환자 14명에게 요료법을 6개월 동안 시행한 결과 고혈압 환자들의 체중.혈압.혈청.콜레스테롤 수치 등이 정상적으로 돌아왔다는 결론을 담고 있다.

논문을 지도했던 식품영양학과 김을상(金乙祥) 교수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배움에 대한 열정과 뛰어난 실험 정신이 돋보여 논문을 통과시켰다"고 말했다. 여든에 박사가 된 金씨는 "늦은 나이에 공부하느라 동료 학생들의 도움을 많이 받아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며 "그러나 40~50대에 박사 과정을 밟느라 힘들어했던 이들에게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용기를 줬던 것은 보람있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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