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승용차진출-외국의 성공사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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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東京=郭在源특파원]일본의 경우 산업정책을 수단으로 절대권력을 휘둘러 온 통산성에도 큰 오점은 있다.통산성의 산업정책이 실패함으로써 오히려 일본산업이 잘된 사례가 있다.60년대 초중반 당시 통산성관료의 상징이었던 사하시 시게루(佐橋 滋)차관은회고록에서 당시 정책실패의 몇 가지를 고백한 적이 있다.자동차와 철강이다.
당시 이륜차메이커인 혼다(本田)기연의 자동차사업진출,스미토모(住友)금속의 고로(高爐)증강을 행정지도를 통해 막으려 했다가실패한 것이다.당시 혼다기연의 창업자인 혼다 쇼이치로(本田宗一郎),스미토모사장인 휴가호 사이(日向方齊)와 통 산성 관료들간의 논쟁은 일본산업사에 큰 획을 긋고 있다.
특히 혼다가「일류기술,일류경영을 통해 세계일류기업으로」라는 기치를 내걸고 자율참여를 주장한 데 반해 통산성은「중복투자.과당경쟁의 동시사망론」으로 맞섰던것은 산업계의 유명한 「신학논쟁」으로 전해지고 있다.
혼다는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면서 1963년6월 마침내 승용차생산을 개시한다.69년3월에는 캐나다,78년3월 미국 오하이오,87년3월 미캘리포니아,88년8월 영국에 현지자회사를 설립한다.이에 앞서 77년2월에는 뉴욕증시에 상장했다.
지금은 3조엔에 이르는 매상고(이중 60%이상이 수출)에 경승용차에서 대형승용차에 이르기까지 50종이상의 승용차를 생산하고 있다.전체 매상고의 77%가 승용차부문이다.연구개발비만도 연간 2천억엔을 넘고 있는 초(超)일류 자동차기업으 로 성공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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