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사회 떠받치는 문화, 기술로만 보는 시각 바꿔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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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6면

'이공계 기피 현상'은 한국 사회의 장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화두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이공계 기피 현상'이라는 문구 자체가 함의하는 뜻은 매우 부정적이다. 마치 이공계는 우리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지만, 오히려 3D로 모두가 피하려는 분야라는 뜻을 풍기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해결방식은 매우 소극적이다. 즉 어떻게 하면 젊은이들에게 3D인데 3D가 아닌 것처럼 홍보를 하며, 어떻게 하면 이공계로 끌어들일 수 있는가 하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지금의 현상은 '이공계 위기 현상' 또는 '한국사회의 위기 현상'으로 불러야 마땅하다. 이러한 위기 현상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기형적 구조에 기인한다. 이런 구조를 갖게 된 것은 인간 및 사회에서 과학이 차지하는 역할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가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과학은 단순히 인간에게 물질적인 편리함을 제공하고 기술발전을 가능케 하는 도구적인 학문이 아니다. 과학을 연구하면 자연에 대한 통일적인 이해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기술은 과학이 인간에게 제공하는 판도라의 상자와 같은 선물일 따름이다. 단지 산업사회로 들어서면서 기술의 우열이 바로 한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했기 때문에 선진국에서도 과학이 갖는 정신문화로서의 가치보다는 기술로의 응용 측면이 강조되곤 했다.

반면 급변했던 한국사회는 오로지 응용기술만을 강조하면서 개발도상국에서 중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 결과 한국에서 과학은 사회구조 전체를 떠받치는 토대로서 정신적인 지주가 되지 못하고, 여러 산업분야를 가로질러 균형적인 발전을 이루어가는 축으로서의 생동력을 상실하게 됐다.

심리학자 칼 융은 "뛰어난 문학가나 예술가가 갖는 상상력의 힘은 과학자가 갖는 상상력의 힘과 동일하다"고 말했다. 균형적인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과학이 사회 내에서 주변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데서 벗어나, 문학이나 예술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한 사회의 총체적인 문화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공계 위기 현상'은 문학과 예술, 그리고 과학을 총체적인 틀 안에서 이해시키고자 하는 균형적인 교육을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다. 즉, 과학적인 상상력을 키워주는 전인적인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얘기다. 아인슈타인은 과학자에게는 "지식보다도 상상력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과학영재의 경우 어릴 적부터 그 영재성을 키워서 과학 분야의 우수성을 발휘하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경쟁력 있는 첨단 산업은 전인적인 교육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진 정신문화로서의 기초과학이라는 풍부한 자양분의 토대 위에서만 꽃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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