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12·19 대선의 국제정치적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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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번 한국의 대통령 선거는 근대 한국사에서 가장 중요한 선거다. 이번 선거는 단순히 한국의 경제나 부에 관한 것이 아니다. 한국을 둘러싼 국제환경이 새 시대를 맞이하는 한국에 변화 없이 계속 지속될 수 있는지가 유권자들이 갖는 진정한 질문이 돼야 한다.

 이번 선거는 한국의 생존에 관한 것이고, 강대국으로 부상하기 위한 한국의 존재와 운명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추악한 뒷골목식 선거전으로 유권자들은 한국이 나아갈 미래와 한국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번 대선을 계기로 한국은 그간 국제사회와 미국이 제공한 통상적인 안전보장으로부터 변화해 막강한 경제대국으로 부상, 이에 상응하는 상호평등 조약, 안전보장, 경제·정치적 동맹관계를 누리게 될 것이다.

 새 정권은 더욱 확고하고 균형 있는 한·미 관계를 만들라는 요구를 받게 될 것이다. 우선 동북아 지역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아본다. 100년 전 시작된 중국의 국공 내전이 이제 종식을 앞에 두고 있지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다. 한국전쟁 체제도 종착역에 다가가고 있지만 그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다. 김정일 시대의 종식은 북한으로 하여금 다른 변화와 가능성을 제공할 것이다.

 일본도 변화하고 있다. 일본 전후세대는 끝나가고 있으며, 일본은 조심스럽게 전략적 입지를 강화해 나가고 있다. 러시아의 태평양 지역에 대한 관심으로 이 지역에서 러·일 간의 국지적 협력과 지정학적 경쟁도 감지된다.

 중국 또한 한반도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김정일 통치가 막을 내리게 되면 중국이 이 지역의 안정을 위해 한반도에 개입을 하려 들 것이다. 북한의 붕괴로 엄청난 탈북자가 국경을 넘어오게 될 경우 그와 더불어 한반도 통일에 따른 경제·사회적 어려움이 발생할 경우 이는 단순히 서울의 고민거리가 아닌 전 세계적인 문제다.

 한국의 통일은 독일 통일보다 더 어려울 것이며 비용 또한 독일을 능가할 것이다. 하지만 통일한국이 옛 실크로드를 부활시켜 한반도를 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가교로 변화시킬 경우 국제 통상무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북한의 붕괴와 통일이 몰고 올 엄청난 변화는 자칫 군사적 충돌은 물론 사회적 붕괴까지 가져올 수도 있다.

 중국이 북한 핵을 묵인할 경우 이는 한국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면 이는 불확실성의 방향으로 가는 것을 뜻한다. 그러기에 북한이 6자 회담에 나오면서도 핵을 더 움켜쥐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이미 핵을 배치했다. 김정일은 그의 권력을 보장해 주는 유일한 방편인 핵을 대가 없이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핵은 그의 남은 마지막 방어선이며 다른 카드는 없다.

 한국의 차기 정권은 역사상 가장 긴박한 시대에 출범한다. 새 대통령은 6자 회담에 신경 쓰면서도 북한과의 대화, 나아가 새롭게 재편되는 동북아 환경에 대응 전략을 짜야 한다. 가까운 미래에 통일이 된다는 가정하에 상응하는 준비를 해야 한다.
 
 한·미 동맹 관계는 한반도 통일이 몰고 올 변화를 안정적으로 이끌어 가는 데 있어 마지막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통일 후 한국은 미국보다 더 강력한 경제력 및 전략적 힘을 가진 러시아·중국·일본 등 주변국 사이에서 자주국가로 살아남을 길을 모색해야 한다. 미국은 이런 변화된 시대가 도래하고 한국이 안정되고 강력한 국가로서 자리 매김을 할 때 한국과 동맹을 맺고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길 것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한국은 점차 자주노선을 지향하게 될 것이고, 한·미 동맹은 달라질 것이다. 한국의 새 대통령에게 이 시대는 도전의 시대가 될 것이다. 어쩌면 이 시대는 한국 중흥의 시작일 수도 있다. 한국인 개개인이나 한국의 산업은 새로 도래할 이 시대를 성공적으로 항해하기 위해 그들의 모든 역량을 한데 모아야 한다.

그레고리 코플리 미국 국제전략연구소·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