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랑>세계화와 시간관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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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한국인은 지나간 과거에 대한 집착심이 강하다.마음의 진행방향이나 의식의 뿌리가 다분히 과거지향적이다.
국제화를 염두에 둘 때 걸림돌이 되는 것이 바로 이 과거지향적인 우리 의식의 편향성이다.해마다 명절연휴때가 되면 줄을 짓는 민족대이동의 성묘행렬에서 보듯 한국인은 틈만 나면 집단화하여 옛날로 돌아가는 과거지향적인 민족임을 알 수 있다.또한 부모가 자식을 나무라거나 최근의 12.12 청산시비와 같이 정치권에 분쟁이 일었을 때 지나간 과거에,문제 해결을 위한 「앞」보다는 「뒤」쪽에 더 집착해 있다.
얼마전 한국문학을 공부하러 유학온 외국학생으로부터 한국인의 의식의 초점이 과거로 거꾸로 돌고있지 않느냐는 재치있는 질문을받았다.한국소설을 읽으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가령 시간이나 숫자에 대한 개념만해도 서양인은 시간약속을 할때한국소설에서처럼 『김서방 오늘 이따가 장터에서 만나세』식으로는하지않는다는 것이다.그 넓은 장터의 어느곳인지,몇시몇분인지 정확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시간약속만 하더라도 『두세시쯤』이라든가 『네다섯시쯤』하는 식으로 부정확한 사고 때문에 외국인으로서 당황하기 일쑤라는 것이다.가게에서 과일을 살 때 역시 『서너개쯤 주세요』라고 명확하게 필요한 숫자를 대지 않는다.세개를 달라는 말인지네개를 달라는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양에 대한 개념에서도 『자장 곱배기』라는 말처럼 모호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정확한 수의 개념이 한국인의 대강대강주의를 낳고 적당적당 정신을 부추겨온 것이 사실이다.혹자는 「서너시쯤」이라든가 「네댓개쯤」의 느긋하고 여유있는 한국인의 후덕한 마음의 미덕을 멋이라고 생각할지는 모르나 한국인은 상대에게 정확히 세개가 필요한지 네개가 필요한지를 서로에게 알리는 명확한 정신이 결핍되어있다는 사실이다.
바야흐로 정부는 21세기를 앞두고 새 정책목표로 「세계화」를천명하였다.
나는 이 말을 우리 의식의 전환이라는 측면에서 한국인의 의식은 이제 「국제화」에서 「세계화」로 가야한다는 말로 듣고 있다. 아울러 우리가 시급히 청산해야할 현재의 습관중에서 우선 개혁돼야하는 것이 막연하고 주먹구구식인 부정형의 부정확한 시간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세계화로 나가는 문화 전략은 정확한 시간의식을 바탕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문화는 이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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