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비행청소년 상담 자원봉사 이주애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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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오후 2시 대구시 동구 신암동 대구소년분류심사원 3층 상담실. 3평 남짓한 공간에 원형 책상 하나. 학생 6명이 메모지와 연필을 하나씩 건네받는다. 문이 열리면서 1백60㎝ 키에 몸집이 작은 이주애(李主愛.68.사진)씨가 들어선다. 그는 학생들과 미소로 인사를 나누고는 자리에 앉았다.

"여기 좋아요?""좋지만 나가고 싶습니다."

李씨는 학생들과 상담을 시작했다.

"차가 쉬지 않고 달리면 어떻게 돼죠? 엔진이 과열돼죠? 삶도 마찬가지예요. 우린 여기서 과열된 삶을 잠깐 식히고 있는 거예요."

李씨의 이야기는 학교의 중요성에서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까지 이어졌다.

"왜 여기서 돈 들여 먹이고 재우는 줄 알아요?""……""여러분이 우리 사회의 귀중한 존재이기 때문이에요." 상담은 1시간 넘게 진행됐다.

金모(17)군은 "말씀대로 열심히 살겠다"며 인사했다. 李씨는 학생들의 손을 꼭 잡아 주고는 상담실을 나왔다. 李씨가 비행청소년을 대상으로 자원봉사를 시작한 것은 1992년 읍내정보통신중고교(당시 대구소년원)에서였다.

94년부터 그는 이곳 소년분류심사원에서 집단상담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심사원에서는 한달에 네번, 읍내정보학교에서는 1주일에 두번 상담한다. 지금까지 5천2백여 시간을 비행청소년과 보낸 셈이다.

"잠시 방황하지만 이들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생각을 바꾸면 일꾼이 돼죠. 평온한 시기엔 순탄하게 공부 잘한 아이들이 사회를 이끌어가요. 하지만 어려운 시기엔 방황을 끝내고 바로 선 아이들이 큰 힘이 됩니다."

이들 비행청소년과의 상담은 이곳에서만 끝나는 게 아니다. 시설을 나온 학생들 중 지금까지 연락하는 학생들도 있다. 李씨는 비행청소년 상담 외에도 한달에 두서너차례 노인을 대상으로 온천여행 등의 자원봉사를 한다. 74년 결성된 홀트대구아동상담소 후원회 창립회원이기도하다. 李씨는 또 전문직 여성클럽인 소롭티미스트 팔공클럽 회원으로 어려운 학생을 돕고 있다.

"돈요? 밥 한끼 해결하면 되는 것 아니예요?"

李씨는 이날도 고신대에 입학했다는 한 학생의 등록금을 전달해야 한다며 상담을 마치고 총총히 자리를 떴다.

글.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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