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동통신사들 국회조사 거부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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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의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에 대한 현장검증이 무산됐다. 이동통신사들이 자료제출을 거부하고 의원들을 막은 때문이다. 이같은 통신사들의 조사 방해는 부당하다. 통신사들은 전기통신사업법 등을 내세우며 "고객의 비밀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궁색하다. 평소에 통신사들이 고객의 비밀보호에 적극 노력했다고 믿는 사람이 거의 없는 까닭이다.

통신사들이 국가정보원과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의 요구에 무조건 협조해 온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때로는 최소한의 법률 요건인 검사장의 승인서조차 없음에도 통화기록을 내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제 와서 '고객의 비밀보호'운운하니 이를 누가 믿겠는가. 오히려 자신들이 수사기관의 부당한 요구에 협조한 사실이 발각나는 것을 두려워해 자료를 은폐했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있다.

과기정위의 현장조사는 국회 증언감정법에 따른 적법한 행위다. 더구나 통신비밀보호법은 감청에 대한 현장조사를 할 수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통화기록 조회는 감청이 아니다'며 불응한 통신사들의 태도는 뻔뻔하기까지 하다. 수사기관이 무차별적으로 국민의 통신비밀을 들여다보며 사생활을 침해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마당에 국회의 현장검증은 반드시 필요한 조치다.

여기에 더해 최근엔 감청과 통화내역 조회가 언론이나 정치권을 감시하는 데 쓰인다는 의구심까지 증폭되고 있다. 이 문제를 놓고 국정원과 청와대 간의 갈등이 있었다는 설도 나돈다. 사실이라면 심각한 사태다. 이와 함께 통비법의 '안보 위해(危害)에 대한 정보수집'조항을 원용해 검사장이 아닌 국정원장 승인만으로 통화내역을 조회하고 있으며, 일부 직원은 백지 승인서를 가지고 조회를 남발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회는 이 같은 의혹들에 대해 끝까지 진상을 추적해야 한다. 그리고는 책임자를 가려내 엄중히 문책함으로써 더 이상의 통신비밀 침해를 막아야 한다. 법과 제도상의 허점이 있다면 이 역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