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CEO의 삶과 경영 ③ 조앤 배론 GBD 사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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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호 19면

취미로 조각품을 모으고 있는 조앤 배론 사장 집은 캐나다산 돌로 깎아 만든 조각품들이 가득하다. 유명 조각가인 주다스 우르라크의 ‘Inuit’(에스키모 말)라고 부르는 에스키모 형상을 한 조각도 눈길을 끈다. 그는 “최근 이 작가의 죽음으로 시장에서는 부르는 게 값”이라고 자랑했다. [신동연 기자]

“처음 한국 땅을 밟았을 때 한 친구가 분명히 산이라고 해서 쳐다봤는데 내 눈에는 언덕으로 보였어요. 그도 그럴 것이 캐나다에서 산이라고 하면 여기서 말하는 어마어마한 산맥쯤 되기 때문이죠.”

주한 캐나다 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낸 조앤 배론(56) GBD(Global Business Development) 사장은 15년 전 한국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의 인상을 이렇게 말했다. 이는 양국의 지리적 격차에 따른 에피소드이지만 한국이 자칫하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말이다. 배론 사장은 원래 캐나다 정보기술(IT) 회사인 텔루스 커뮤니케이션의 한국 지사장으로 근무했다. 2001년부터는 이 회사가 SK그룹과 합작해 만든 텔에스케이(TELSK)의 대표이사로 를 지냈다. 450명의 직원을 거느린 유명 외국인 경영인이었다.
“지난해 여름 캐나다 본사에서 한국지사 직원을 감원하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나는 본사의 그런 방침에 반발했고,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아 사표를 냈습니다. 힘든 결정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CEO로서 잘한 결정이었다고 자부합니다.”
그는 “한국 직원들은 교육 수준이 매우 높고 유능한 데다 심성이 따뜻해 애정이 각별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한국 직원들과 함께 일하면서 '자기 일에 대한 열정' '조직 내 위계질서'윗사람을 공경하는 태도 등을 배웠다고 강조했다.

배론 사장은 지난해 이 회사를 그만둔 뒤 현재 한국과 캐나다 간 기업투자를 컨설팅하는 전문업체인 GBD를 운영하고 있다. 땅 넓고 천연자원이 많은 캐나다의 인구수는 고작 2700만 명인 데 비해 좁고 척박한 한국은 5000만 명이나 돼 이 두 요소를 조합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고 그는 밝혔다.

“캐나다는 오일·가스·에너지 등의 천연자원이 풍부합니다. 따라서 캐나다 천연자원에 투자하는 한국 기업을 연결하려고 합니다. 풍부한 노동력이 있는 한국 기업을 찾고 있습니다. 특히 ‘황우석 박사 사태’로 한국 생명과학(BT) 산업군에 대한 인식이 세계적으로 나빠졌습니다. 한국 내 유관 사업체가 매출 부진을 겪는 등 나쁜 영향을 받고 있고요. 그래서 캐나다에 있는 생명과학 연구 중심의 대학과 여기 산업체를 연결해, 한국 BT산업의 부진을 상쇄하려고 합니다.

또 다른 프로젝트로는, 기술특허를 가지고 있는 한국 중소 IT회사가 있는데, 이 회사를 위해 캐나다에서 투자를 끌어들이려고 합니다. 아울러 이 중소기업에 가능하다면 캐나다 회사의 선진시스템도 도입할 수 있게 하려고 합니다.”

사실 배론 사장은 한국이 그냥 좋아 한국을 위해 일하겠다고 말하고 다니는 지한파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1999년 서울시의 외국인투자자문회의 초대 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였다고 하는 ‘샌드위치론’을 불식하기 위해 지방 경제 활성화에서도 힘써야 합니다. 외국에는 인구 1만∼5만 명 규모의 소도시에도 외국 기업이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외국 투자를 끌어들여, 서울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균형 발전이 이루어집니다.”

그는 특히 한국은 우수한 여성 인력이 많아 10년 내에 세계 5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한국 여성들에 대한 조언도 했다.

“자연스럽게 자신을 인정해야 합니다. 여성으로서 못하는 부분은 인정하고, 잘하는 부분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1인 기업도 많아야 합니다. 선진국에서는 직원 없이 혼자 수백만 달러를 버는 사람도 많아요.”

그는 여성 경영인은 남편의 외조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연하의 남편인 테리 툴할스키씨는 같은 직장에서 만났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집 안팎에서 파트너로서 신뢰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툴할스키씨는 배론 사장이 세운 GBD의 25% 지분을 보유한 2대주주이기도 하다. 결혼 전에 둘만의 파트너십을 유지하기 위해 아이도 낳지 않기로 합의했을 정도다. 또 배론 사장이 주한 캐나다 상공회의소 회장을 그만둔 뒤 남
편인 툴할스키씨가 바통을 이어받기도 했다.

배론 사장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쓴 작가 루이스 캐럴의 말을 인용하면서 인터뷰를 마쳤다.

“어디를 가는지 모르면, 그냥 전진하려고 합니다. 저는 계속 앞으로 전진할 겁니다.(If you don’t know where you’re going, just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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