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前 폭력조직 '7공주파' 보스 참회의 경로잔치 열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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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께 참회하는 마음으로 경로잔치를 열었습니다. 부모님을 제대로 모실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 지금껏 가슴 아픕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강원도 일대를 장악했던 전설적인 여성 폭력조직 '7공주파'를 이끌었던 김남숙(金南淑.50.사진 맨 오른쪽)씨. 그는 16일 고향인 강원도 강릉에서 1천2백여명의 노인을 위한 경로잔치를 열었다. 점심 대접과 함께 가수의 축하 공연도 이어졌다. 생활이 어려운 독거노인에게는 목도리.쌀.화장품 등 선물도 전달했다.

평범한 여자로 살고 싶었던 그였지만 운명은 그를 조직 폭력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했다. 金씨는 스무살에 육군 대위와 결혼, 두 아들을 낳고 잘 살았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스물일곱살 때 남편이 췌장암에 걸려 훌쩍 세상을 떠났다.'먹고 살기 위해' 강릉에서 룸살롱과 나이트클럽을 운영했던 金씨는 조직폭력배의 '뒤를 봐주겠다'는 요구를 들어주지 않아 업소가 박살나고 종업원들이 구타당하는 사고를 당했다.

비록 여자의 몸이지만 진정한 건달이 뭔지를 보여주겠다며 찾아간 곳이 태권도장. 그는 이곳에서 주먹이 세고 배짱도 두둑한 '여동생'들을 골라 '7공주파'를 결성했다. 그리고 혹독한 훈련에 들어갔다. 새벽부터 경포대 백사장을 달리고 자갈을 넣은 샌드백을 치며 체력을 단련했다.

"그때부터 '밤의 전쟁'이 시작됐죠. 저쪽에서 치면 이쪽에서 박살내고, 그러면 또 저쪽에서 건드리고…. 끝없는 보복이 반복됐어요."

처음에는 여자라고 만만하게 보던 깡패들도 결국 '7공주파'에 무릎을 꿇었다. 그 사이 金씨는 전문 칼잡이에게 얼굴을 찔리고 암매장을 당할 뻔 하기도 했다.

'7공주파'에겐 일곱개의 원칙이 있었다. 돈을 탐내지 말고, 약자를 먼저 배려하고, 강자에게는 더욱 강해지고, 무기를 들어서는 안 되고, 목숨을 해치는 일은 절대 안 되고, 남을 고소하지 말고, 유부남을 사귀지 말라는 것이었다. 조직원들이 하나둘 애인을 만나 가정을 꾸리면서 '7공주파'는 8년간의 폭력 생활을 마감하고 자연스럽게 해체됐다.

그는 이후 화장품 대리점 운영과 상가임대업 등을 했다. 2000년에는 자신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담은 자전적 소설 '암흑세계에 핀 꽃'이라는 책도 출간했다. "석달에 한번 고향의 노인들을 찾아 뵙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앞으로도 그 약속을 지킬 겁니다."

그는 "여력이 되면 전국을 돌며 노인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했다.

김동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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