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日 납치 협상 난항 뒷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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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지난 13일 오전 평양의 고려호텔. 김정일 총서기의 측근인 강석주(姜錫柱)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테이블에 앉자마자 일본의 다나카 히토시(田中均)심의관과 야부나카 미토지(藪中三十二) 아시아.대양주 국장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칼을 호주머니에 몰래 숨기고…. 잘도 오셨군요."

'칼'이란 일 협상단이 북한을 방문하기 이틀 전 일 정부가 유엔의 동의없이 자체적으로 북한에 대해 경제제재를 가할 수 있는 외환관리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을 뜻했다. 일본으로부터의 대북 송금을 차단하려는 법안을 통과시켜 놓고 와선 무슨 결실을 기대하느냐는 핀잔이었다.

마이니치(每日)신문과 일 외무성 관계자들은 16일 북.일 간 납치문제 협상 기간 내내 북한은 '일본 성토'로 일관했다며 대화 내용을 이같이 전했다.

姜제1부상은 "그쪽에서 힘으로 눌러 보려는 것 같은데 우리는 그런 압력에 결코 굴하지 않아요."

다나카 심의관이 "그 법안은 납치문제의 조기 해결을 요구하는 일본 내 여론을 배경으로 나온 것"이라고 역설했지만 북측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고 한다.

이 같은 회담 분위기 때문일까. 다나카 심의관은 지난 주말 귀국 후 "지금까지 해온 협상 중 최고로 불유쾌한 협상이었다"고 털어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한 외교소식통은 "북한의 이 같은 강경 입장의 뒤에는'일본이 납치문제 해결의 대가로 뭔가'당근'을 줘야 할 것 아니냐'는 메시지가 깔려 있었다"며 "하지만 일 정부도 북핵 문제가 해결 안 된 시점에 단독으로 이를 결정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고 분석했다. 미국을 의식해야 하는 일본이 6자회담을 앞두고 북한에 경제적 지원을 약속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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