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단상>APEC 팡파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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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인도네시아 보고르 상공에 또 한차례 「태평양 천둥」소리가 우르르 울리고 있다.「열린 지역주의」라는 단비가 내릴 것인가,아니면 해마다 한번씩 지나가는 「마른 천둥」에 그칠 것인가.
작년 시애틀의 첫 정상회담이후 1년만에 亞太경제협력체(APEC)실무그룹은 2020년까지 서로간에 무역및 투자장벽을 없애는야심찬 청사진을 서둘러 내놓았다.
APEC은 세계무역의 절반,GNP의 60%를 차지한다.이들이공동체로 묶여진다면 「유럽요새」가 무색해진다.
문제는 숫자의 마술이라기보다 냉엄한 현실이다.APEC 18개국은 공통점보다 상이점이 훨씬 많다.1인당 국민소득은 최고 3만달러에서 1천달러 미만까지 격차가 난다.발전단계도,개방의 정도도,자본주의의 「상표」도,문화도,APEC에 대한 기대도 각각다르다. 정상(頂上)들의 정치적 의지로 이들을 공식적인 틀 속에 가두는 일은 「세기적 실험」이다.대다수 국가가 수출을 성장의 엔진으로 삼고 수입및 외국인투자는 일부 제한을 고집한다.역내(域內)교역이 크게 늘고 있지만 부품들이 조립기지를 좇 아 국경을 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제품의 종착역은 미국과 유럽이다. 회원국은 자신을 보호하며 서로를 넘보는 경쟁관계에 있다.미국과 호주,최근들어 인도네시아가 APEC에 적극적인 반면 일본과 홍콩.중국은 뒷전이다.말레이시아는 서양세력을 배제한 지역협력체를 계속 고집한다.
클린턴의 「APEC 게임」목적은 세가지다.첫째는 유럽연합(EU)을 견제하는 유럽카드다.일본및 중국에 대한 개방.개혁 압력이 그 둘째다.APEC을 통한 집단압력으로 「협상방정식」을 바꾸려 시도한다.클린턴 외교및 리더십의 구체적 성과 가 그 세번째 목적이다.
역내 국가간의 세관절차 간소화.표준화등은 어느 때든 합의가 가능하다.그러나 핵심인 자유화조치는 정상들의 선언으로 이어진다해도 개별국가 정부에 대한 구속력은 의문으로 남는다.또 장기자유화 계획이 정상들의 뒷받침을 받아도 그 실행에 는 지루하고 복잡한 협상이 요구된다.
APEC,말 그대로 비공식적 협력포럼이 순리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용의주도한 실무그룹의 청사진 역시 APEC의 「개념적 허구」를 감추지 않는다.중간선거 대패이후 이 「무리수」는 더해갈 조짐이다.정상의 나들이는 물론 국가적 대사다.
그러나 의미부여가 지나쳐 APEC 팡파르에 한국이 들떠있는 듯한 인상은 밖에서 보기에도 조금 우습다.
〈本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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