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프라임 위기 확대재생산하는 모기지 파생 금융상품과 헤지펀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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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월, 경영난을 겪고 있던 미국 최대의 자동차 제조업체 GM은 신용등급이 떨어질 조짐이 완연했다. 이 때 GM이 취한 조치는 자신들이 운영 중인 신용 사업 가운데 모기지 대출 사업을 분리하는 것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모기지 대출 사업은 수익성이 높았다. 돈을 지속적으로 끌어들이려면 높은 신용등급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회사의 전반적 신용 등급이 떨어질 가능성을 감지한 GM이 급히 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 해 5월 신용평가사들은 이 회사의 신용등급을 투자 부적격 단계인 정크본드(junk bond) 수준까지 낮췄다.

GM이 경영난 와중에 애써 모기지 사업부를 독립시킨 것은 결과적으로 도움이 됐다. 그 후 모기지 사업의 부실이 크게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불길이 번지는 가운데 가보(家寶)라고 여기고 구해놓은 것이 화약이었음이 밝혀진 셈이다. 모기지 사업부를 그대로 두었더라면, GM의 회생 과정에서 큰 골칫거리가 됐을 것이다.

GM과 달리 씨티그룹에는 이런 행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씨티는 올해 3분기에만 모기지 부실로 68억달러(약 6조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주가는 올해 들어서만 반 토막이 나고 말았다. 이로 인해 경영진이 교체됐다. 설상가상으로 세계 최대의 상업은행이자 미국 금융계의 자존심이라고 할 시티의 경영권이 이미 중동계로 넘어갔을 것이라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최근 시티는 아부다비투자청(ADIA)으로부터 75억달러를 유치하면서, 4.9%의 지분을 넘기기로 했다. 이에 따라 ADIA는 기존의 최대 주주인 사우디의 알 왈리드 왕자를 제치고 최대 주주로 떠오를 전망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기업과 금융기관이 모기지 사업 하나로 이렇게 울고웃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단적으로 모기지 사업이 파생 금융상품(derivatives)을 통해 훨씬 더 규모가 커지기 때문이다. 파생상품은 기초 증권을 바탕으로 파생돼 나온 계약이다. 따라서 파생상품의 가격은 기초 증권의 가치로 평가된다. 금융기관들이 위험을 회피해야 할 요인들은 많아지고, 금융공학의 발달로 복잡한 파생상품의 가격 산정이 쉬워지면서 파생상품 시장은 급격히 커졌다. 파생상품은 지난 20년 동안 통화, 상품, 채권, 주식과 같은 전통적 자산은 물론 모기지, 신용, 전력 등 새로운 분야에 널리 퍼져왔다. 21 세기가 시작되기 전 1천억달러도 채 안 됐던 파생상품 규모는 5년여만에 약 1조5천억달러로 늘어났다.

#보이지 않는 적처럼 무서운 헤지펀드의 파생상품 거래

주택대부조합이 발행한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1이 있다고 하자. 조합은 이 모기지 약정서를 담보로 투자은행에서 돈을 빌린다. 투자은행은 다시 이를 증서의 형태로 만들어 각종 금융기관과 펀드에 판다. 이들은 다시 이 증서를 기반으로 해서 파생상품을 만들어 판다. 이 때 1이었던 증권을 기초로 한 파생상품의 규모는 5나 10이 될 수도 있다. 파생상품을 다루는 한 사람이 금융기관에 치명적 피해를 입힐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런 파생상품의 성격 때문이다. 1995년 닉 리슨은 파생상품 거래에서 입은 수십억달러의 손실을 감추려다, 2백33년 역사의 투자은행인 베어링스를 파산으로 몰아갔다. 2002년 얼라이드아이리시은행의 외환 딜러인 존 루스낙 역시 비슷한 실수를 저질렀다.

헤지펀드도 사태를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각국의 금융 감독당국의 규제를 거의 받지 않는 이런 자본은 파생상품 거래에 가장 적극적이다. 더욱이 이들은 거액의 자금을 대출받아 활용한다. 헤지펀드의 파생상품 거래로 당초 1이었던 기초 증권은 20, 30, 많게는 100으로 부풀려진다. 199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2인을 포함한 전문가들이 참여한 헤지펀드인 LTCM은 금리를 기초로 한 파생상품 거래 실패로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대형 투자은행들의 구제 금융을 받아야 했다. 90년대 중반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던 이 헤지펀드는 수십억달러의 자금을 근거로, 수백배의 거래 규모를 기록하기도 했다. 세계 최대 규모였던 이 헤지펀드는 한 때 전세계 파생상품 거래의 5%를 차지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기초 증권으로 한 파생상품 거래에 실패한 헤지펀드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미 한 개의 대형 헤지펀드가 파산했고, 두 개의 헤지펀드도 환매 사태에 시달리고 있다.

헤지펀드의 파생상품 거래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규제 당국의 눈길에 포착되지 않은 채 세계 각국의 금융시장에서 횡행하고 있다. 이 거래에서는 주가나 금리, 신용등급, 곡물 수확량, 유가, 기후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것들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 때문에 파생상품은 규모를 짐작하기도 어려우며, 누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조차 알기 어렵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기반으로 한 파생상품의 부실 규모도 현재 정확히 추정하기가 어렵다. 보이지 않는 적과 마주한 전세계 금융시장에는 지금 불안 심리가 극도로 팽배해진 상태다.

이여영 기자

◆ 정크본드(junk bond):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이 발행하는 고위험·고수익 채권. 미국의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Moody’s)의 신용등급이 Ba 1, S&P(Standard & Poor's)의 신용등급이 BB 이하인 기업이 발행한 채권이 정크본드로 분류된다.


<제 3차 서브프라임 쇼크가 온다>

제3차 서브프라임 쇼크가 온다 (2)

1. 왜 지금 서브 프라임이 문제가 되고 있나?
2. 미 모기지 시장 구조 대해부
3. 1, 2차 쇼크의 전개과정, 그렇다면 3차 쇼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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