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합집산 속에 사라지는 소신정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대선 막판에 정치세력의 이합집산이 봇물이다. 벽보 12장에서 어떤 얼굴은 자고 나면 사라진다. 투표가 코앞인데도 최종 후보는 아리송하다. 정치인은 상황에 따라 진로를 택할 수 있다. 그러나 명분이 뚜렷해야 한다. 그리고 과거의 길과 다르면 설명해야 하고 잘못이 있었다면 사죄해야 한다.

5선의 무소속 정몽준 의원은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며 한나라당에 들어갔다. 그는 “실패한 20년의 정치실험을 마감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태우 5년, 김영삼 5년, 김대중 5년, 노무현 5년을 그는 무슨 근거로 싸잡아 ‘실패한 20년’이라 하는가. 5년 전 그는 자신의 보수 정체성과는 거리가 먼 노무현 후보와 단일화했다. 그 덕분에 ‘아마추어 진보정권 5년’이 열렸다. 그의 말대로 ‘실패’였다면 그 자신이 가장 처참한 5년 실패에 기여한 것이다. 그런데 그는 제대로 된 설명과 사죄가 없다.

심대평 국민중심당 후보는 후보로 등록하면서 “정권교체는 역사적 사명”이라며 “사즉생의 신념으로 중심에 서겠다”고 했다. 그는 같은 충청도 출신 이회창 후보가 출마하자 ‘추대’의 세레나데를 보냈다. 그러다 이명박 후보 측이 러브콜을 보내자 단일화 협상을 했다. 그러더니 막판에 이회창 후보로 돌았다. 내년 총선에 이 후보를 간판으로 충청당을 재건하겠다는 계산인 것이다. 그는 ‘사즉생’의 중심이 아니라 대선 비즈니스의 중심에 섰다.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는 2007년 대선의 유일한 뉴 페이스(new face)다. 그의 지지율 비결은 신선함이다. 그는 후보로 등록하면서 “반드시 승리해 깨끗하고 따뜻한 번영과 한민족의 위대한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그런 그가 정동영 후보와의 단일화를 숙고하고 있다고 한다. 말이 단일화지 정 후보가 문 후보를 흡수하는 것이다. 문 후보는 그 동안 국정 실패 세력이라며 정 후보의 사퇴를 요구했는데 이 주장도 철회했다고 한다. 그가 외치던 ‘반드시 승리’와 ‘새 시대’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사라지는 벽보에서 유권자는 사라지는 소신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