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저광장>정선 아우라지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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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아플 틈조차,외로울 여유조차 없는 도시인들도 겨울로 가는 길목에 들어서면 한번쯤 자신을 되돌아보며 몸과 마음을 세척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마련.
그리고는 순박한 자연이 잘 살아있는 곳에 며칠이고 푹 몸과 마음을 내맡기고 싶다는 바람을 키우게 된다.
이런 사람들에게「오지의 땅」,강원도 정선으로 가는 여행은 얼마쯤 살맛을 되찾게 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특히 몸을 내맡긴채 스쳐지나는 차창에 갖은 상념들을 쏟아낼 수 있는 기차여행은 나그네에게 각별한 감회를 안겨준다.
「정선선을 타세요.」 이름 모를 산야의 나무들이 겨울채비를 위해 홀로 제잎을 털어내 발등을 덮는 겨울로 가는 길목에 정선선 여행은 아주 제격이다.
겨울 나목인양 불필요한 것들을 모두 떼어내고 달랑 두량만을 매단채 사람이 별로 없는 들과 강.산을 맴도는 정선선은 혼탁해진 도시인들의 감정을 말갛게 씻어내기에 더할 수 없이 좋다.
청량리를 떠난 태백선열차가 증산에 이르면 손님이 거의 모두 내리게 된다.긴 꽁무니를 떼어낸 후 정선선은 홀가분한 모습으로별여곡~선평~정선~나전~여량~구절리등 모두 6개의 고즈넉한 마을을 지나며 한맺힌「정선 아리랑」의 애환을 들려 준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주게/싸리골 올 동백이 다 떨어진다/떨어진 동백은 낙엽에나 쌓이지/사시장철 임 그리워 나는못살겠네.』 외로움이 마을사람들의 표정과 옷깃에서 묻어날 것 같은 여량의 아우라지 강은 무형문화재이기도 한「정선아리랑」의 고향이다.
아우라지는 두 갈래로 흘러온 내(임계천과 송천)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곳이라는 뜻으로 북면 여량리에 있는 나루이름.
위의 노래는 이 강을 사이에 둔 여량리와 유천리 마을의 한 처녀.총각이 홍수로 만나지 못하자 안타까운 마음을 정선아리랑 가락에 실어 부른 것이라 전해진다.
강심에는 두 물줄기가 합치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작은 소용돌이가 일고 있고 강언덕에는 40년전 어느 혼례식날 나룻배가뒤집혀 목숨을 잃은 신부의 영혼을 달래기 위한 처녀 청동상이 서있다.그리고 인적이 뜸한 그곳에 시간도 조용히 고여 있음을 느끼게 된다.
여량리와 유천리 사이를 흐르는 폭 60여m의 강에는 나룻배가할일없이 흔들리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이따금씩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 4백원씩 받고 강을 건네주는 선부 김만용(65)씨는18년째 이 일을 거들고 있다.
증산에서 45.9㎞를 달리는 정선선은 하루에 여섯번 뜬다(오전 2시40분,5시50분,9시,오후2시15분,5시10분,6시50분.소요시간은 1시간.요금은 5백원).
서울 청량리역에서 증산까지 이어주는 태백선은 하루 5차례가 있는데 통일호의 경우 오전 10시,정오,오후 10시등 3번 출발하며 소요시간은 4시간 17분 (요금은 4천5백원).
철도인생 20년의 정선역장 최관철(44)씨는 『지난 67년부터 운행을 시작해온 정선선은 주변의 대성탄좌,나전 광업소,명주광업소등 44개의 탄광중 42개가 폐광돼 이제 썰렁하게 빈차로운행될 때가 많다』고 전했다.
철도청은 97년께 이 노선을 폐지할 계획이다.
주변에 억새풀로 유명한 민둥산,아름다운 등산로를 갖고 있는 노추산.가리왕산등이 있고 맑고 푸른 조양강과 송천이 줄곧 철로를 끼고 흘러 경관이 아름답기 그지없다.숨바꼭질하듯 산과 산을잇는 터널을 9개나 통과한다.
[旌善=高惠蓮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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