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행정선진국은이렇다>5.사설 교도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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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식사시간을 알리는 벨소리와 함께 굳게 닫혔던 교도소 쇠창살이스르르 올라간다.
이어 문이 열리고 죄수들이 쏟아져 나온다.죄수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무인 감시카메라에 의해 체크된다.
마치 미국영화『포트리스』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영국 최초의 사설(私設)교도소 돈카스터의 식사시간 모습이다.
돈카스터가 문을 연 것은 지난 6월.세계 최대 사설 교도소회사인 미국 웨켄허트社가 영국 정부와 계약을 맺어 건설한 순 미국식 사설교도소다.물론 교육.운영의 모든 것을 사설회사가 책임지고 있다.
계약금액은 5년간 6천만파운드(7백20억원)로 재소자 한사람당 1주일에 3백10파운드(37만원)꼴이다.영국내 재소자 한사람당 평균 교도비용 4백42파운드(53만원)에 비하면 30%나싼 값이다.
웨켄허트사는 이 돈으로 재소자를 입히고 먹이고 교육하고 재운다. 남는 돈만큼이 이 회사의 몫이다.수익을 높이자면 관리.경비 인력을 극소화 해야 하고 이를 위해 최첨단 보안시설이 필수적이다. 영국에 현대적 의미의 교도소가 들어선지 2백년.고집스레 재소자의 인간적 처우와 사회복귀를 추구해온 전통적 교정행정이념에서 보면 돈카스터는 엄청난 변화의 시작이 아닐 수 없다.
영국이 이처럼 교정의 사설.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경비절감을 위해서다.90년4월 맨체스터교도소에서 발생한 폭동사태가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재소자.교도관등 수십명의 사상자를 낸 최악의 폭동사태에 교정업무의 주무부서인 내무부가 발칵뒤집힌 것이다.교도소를 더 지어야 한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지만결국 예산이 문제였다.
91~92년 3천7백68명을 수용할 6개 교도소를 짓는데 2억2천2백만파운드(4천3백억원)가 들었다.그러나 영국경제가 급속히 힘을 잃어가는 상황에서 이만한 비용은 감당키 어려운 부담이 됐다.그래서 나온 대안이 바로 교정업무의 사설 화였다.
이미 7년전 내무장관 더글러스 허드가 교정시설의 사설화 방안을 의회에 제안했으나 당시엔 재소자의 비인간적 처우가 문제돼 부결되고 말았다.그러나 그후 4년이 못돼 의회는 최초의 시범 사설교도소 올스의 운영을 허가한다.
최초의 시범 사설교도소 올스의 운영권은 그룹4에 돌아갔다.그룹4는 네덜란드의 거부(巨富)조겐 필립 소렌스의 소유로 세계 26개국에서 사설교도소를 운영,한해 4억6천7백만파운드(9천2백억원)를 벌어들이는 다국적 회사다.91년초 문을 연 올스교도소의 시범운영 결과는 일단 합격점을 받았다.재소자들에 대한 교육부실과 마약사용자 증가등이 문제로 지적됐지만 운영비가 싸다는게 실증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9월엔 내무장관 하워드가 전국 교도소의 10%를 96년까지 사설화한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반대도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맨 먼저 목청을 높인 곳은 교정협회였다.협회장 존 바텔은『사설화는 재소자에 대한 인간적 처우와 사회복귀라는 교정행정의 소중한 전통을 포기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언론에서도 미 국.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 전체 교정시설중 사설교도소의 비율이 각각 8%,2%에 불과하다며 이의 확대를 반대하는등 사설교도소의 문제점을 집중 보도했다.
교도소 감독관 의장 스태판 터민은『올스의 재소자들은 무기력하고 복종적이다.이들이 사육되는 양떼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불만을 얘기할 수 있는 입이 있다는 정도일 것』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사설교도소에 대한 각계의 비난이 높아지자 내무부는 최근 사설교도소에 대한 일체의 시설공개를 금지시켜버렸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학계.종교계등을 중심으로 교정시설의 사설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우리의 경우 교정 시설.환경이 선진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상태여서 사설교도소 설립 주장은 깊이있게 검토해볼만 하다.
그러나 사설 교도소의 완벽한 보안시설과 경비절감등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선진국가들이 아직도 보다 인간다운 처우가 보장되는 일반 교도소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바가 크다.
〈李正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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