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팎 돈 가뭄… ‘실탄의 추억’ 잊어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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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호 05면

한나라당은 최근 제2금융권 4곳에서 250억원을 빌리는 데 ‘성공’했다. 대통합민주신당도 200억원 차입을 시도하고 있다. 그중 150억원 성사 여부가 며칠 안에 결판난다. 신당은 소속 의원 중 80여 명에게서 3000만원 신용대출을 받아 당에 내겠다는 동의까지 받아 놓은 처지다.

대선과 MONEY

일반인들은 ‘대통령을 배출할지도 모르는 유력 정당들이 선거자금을 빌리다니?’ 하고 의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각 당 관계자들은 지금 상황을 ‘돈 가뭄’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큰 이유는 정당 후원회 폐지와 기업의 정당 후원금 금지다. 커다란 자금 조달 통로가 막혀버렸다. 2002년 대선과 큰 차이점이다.

후보자들은 선거가 끝난 뒤 선거비용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보전받을 수 있다. 대
선에서 유효투표의 10~15%를 얻으면 선거비용의 50%를, 당선되거나 15% 이상 득표하면 전액을 돌려받을 수 있다. 한도는 465억9300만원이다. 물론 국민 세금이다. 한나라당과 신당이 차입에 나설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돈을 빌려주는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선거비용 보전이 일종의 ‘예금보호장치’가 되는 셈이다.

무소속 이회창 후보가 며칠 전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대선비용에 대해 “15% 이상 득표는 틀림없기 때문에 환급금을 담보로 빌릴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차입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창조한국당은 문국현 후보가 사재를 털었다. 보유 주식을 팔아 애초 자신이 내기로 했던 금액보다 많은 30억원+α를 조달했다. 민주당이나 민노당 형편은 더 어렵다.

선거비용을 보전받는 경우에도 모든 비용이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목돈이 들어가는 선거사무소의 설치·유지 비용이나 이른바 ‘선거 조직’ 운영비의 상당 부분도 돌려받을 수 없다. 지난 대선까지 각 당은 이런 비용을 어떻게 해서든 만들었다. 실무진에는 매달 백만원 이상의 활동비를 줬다. 각 지구당에도 적잖은 금액의 ‘실탄’이 내려갔다. 한 번에 수천만원씩, 수차례에 걸쳐 돈이 내려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그중 상당 부분은 불법 자금과 얽혀 있다. 현재 각 후보 진영의 금고는 꽉 닫혀 있다.

지역 선거조직에는 음성적인 돈이 내려가지 않는다. 선대위 실무자들은 활동비를 받지 못하니 어쩔 수 없이 ‘자원봉사자’가 됐다. 한나라당 이방호 사무총장은 “쓸 돈도 없고, 선거법상 쓸 수도 없다. 일선에서 아우성치지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신당 문학진 총무본부장은 “사람들이 자꾸 돈 이야기를 해서 ‘내 얼굴이 돈으로 보이느냐’고 말할 정도”라며 “정말 줄 돈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대선 판에 돈이 이렇게 귀해진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돈의 속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돈은 영리해서 ‘이득’이 생기는 곳을 찾아간다. 이득이 있어도 위험이 너무 크면 좀처럼 가지 않는다.

우선 조달 측면을 보자. 기업이나 정치인 모두 돈을 주고받는 것의 위험성이 매우 높아졌다. 여야 관계자들은 “2004년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3년 전 대선자금 수사는 불법 자금을 주고받았다간 대선에 이기든 지든 큰 곤욕을 치른다는 것을 입증했다. 실제로 각 당은 불법 자금을 거부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선거자금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제안해온 중소기업인이나 개인이 있었지만 다 거절했다”(한나라당 이방호 총장), “내년 총선 공천을 조건으로 특별당비를 내겠다는 경우가 2건 있었지만 그런 제의를 단칼에 잘라버렸다”(신당 문학진 본부장) 등이다. 게다가 ‘삼성 비자금’에 대한 검찰 수사와 특검법 처리도 대선자금 시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고 정치권에선 보고 있다.

1년여 이상 유지되고 있는 이명박 후보의 ‘대세론’도 돈 가뭄의 한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대세론이 장기간 유지되다 보니 1등 후보 쪽에선 굳이 돈을 만들어 쓸 이유가 없어지고, 추격하는 다른 후보들은 돈을 만들기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지출 측면에서도 돈은 영리하게 움직인다. 후보 진영에선 돈이 실제로 표와 연결되는지 돈의 ‘효용’을 따져본다. 정치권에선 ‘30% 룰’이 퍼져 있다. 1억원을 내려보내면 중간에서 챙겨가는 ‘누수’가 생기고 3000만원만 현장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이 후보의 핵심 참모는 “이명박 후보는 돈이 실제로 현장으로 내려가지 않고, 내려가도 제대로 쓰이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고 말했다. “대선 4개월 뒤 총선이 있다. 돈이 내려와도 넉달 뒤 자기 선거에 쓰려고 모아두지 누가 돈을 쓰려고 하겠느냐”는 얘기는 여야 양쪽에서 들을 수 있다. 이렇게 효용이 떨어지는 돈을 굳이 예전처럼 내려보낼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현장의 돈 수요도 줄었다. 각 지역의 실탄 요청이 5년 전에 비해선 대폭 줄었다. 정치권 인사들은 “4월 총선 때 공천을 의식하는 사람들은 중앙당에 돈 달라고 손을 벌리기 어렵다”고 말한다. 유권자들이 금품이나 식사를 제공받은 경우에 그 금액의 50배를 물리는 과태료 조항도 현장의 돈 수요를 줄이는 데 한몫하고 있다.

그렇다면 2007년 대선은 과연 투명한 돈 선거가 될 것인가.

몇 가지 고비가 남아 있다. 그중 하나는 지지율 추이다. 선거전이 박빙이 될수록 돈을 쓰려는 유혹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BBK 사건 수사가 불리하게 나와 이 후보의 지지율이 30%대 초반으로 밀리고 흔들리면 실탄 요청이 쇄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신당 관계자는 “돈은 지지율과 직결돼 있다. 5년 전에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이후 노 후보 지지도가 이회창 후보를 추월하니까 주변에 기업 관계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2007년 대선이 끝나봐야 과연 돈의 위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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