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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일의 INSIDE PITCH PLUS <38> 부산을 지켰던 자갈치 삼총사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8호 15면

서재응, 김병현, 최희섭.

KIA 타이거즈 팬이라면 본거지 광주일고 출신의 삼총사가 잘 익은 무등산 수박보다 더 빨간 호랑이 유니폼을 입고 함께 뛰는 모습을 한번쯤은 그려봤을 것이다. 올 시즌 최하위라는 참담한 성적을 기록하고 나서라면, 그 로망은 더 간절할 터다. 1995년 나란히 광주일고 유니폼을 입고 3학년(서재응), 2학년(김병현), 1학년(최희섭)으로서 동대문구장을 수놓았던 이들이 나란히 KIA의 붉은 유니폼을 입었더라면!

같은 본거지 출신의, 그것도 같은 학교에서 1, 2, 3학년으로 활약했던 스타가 나란히
연고지 프로팀의 유니폼을 입고 뛰기란 쉽지 않다. 그들의 실력과 그들의 건강, 그리고 그들의 진로에 대한 운(運)이 함께해야 가능한 일이다. 국내 프로야구 역사에도 그런 세 명의 선수를 찾기는 힘들다. 누구 얘길 하려는 걸까.

롯데 자이언츠 팬들은 올해까지 그런 행운을 11년 동안 누렸다. 그 11년 동안 롯데 팬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준 ‘자갈치 삼총사’는 염종석, 손민한, 주형광이다. 91년 부산고. 그때 3학년 염종석, 2학년 손민한, 1학년 주형광이 마운드를 지켰다. 92년 염종석이 먼저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염종석은 그해 신인왕,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차지하며 팀을 한국시리즈 정상으로 이끌었다. 그때 그는 부산 앞바다에서 일어난 거대한 파도였다. 누구는 반란이라고 했다. 같은 해 부산고는 고교야구 정상에 섰다. 대통령배 때는 에이스 손민한이 경북고와의 1회전에서 부상으로 물러나자 교체투입된 주형광이 5연속 완투승을 거두며 부산고에 우승컵을 안겼다.

손민한은 졸업 뒤 대학(고려대)에 진학했고, 이듬해 주형광은 졸업과 함께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삼총사는 손민한이 대학을 졸업한 97년 마침내 다시 만났다. 6년 만이었다. 부산 앞바다 푸른 물결을 상징하는 부산고 유니폼에서 가슴에 새긴 글씨만이 바뀌었을 뿐이었다. 그들이 자라고 꿈을 가꿔온 고향, 부산의 롯데 자이언츠 유니폼이었다.

셋은 고교시절처럼 마운드의 주축이 됐고, 팀의 상징이 됐다. 올해까지 염종석 93승, 주형광 87승, 손민한 85승. 셋이서 265승이나 거뒀다. 고교시절의 그 위용 그대로였다. 그들이 마운드를 지킨 11년 동안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르지 못한 것이 짙은 아쉬움으로 남았을 뿐, 그들은 한결같이 고향을 지키는 등대였다. 그들이 사직구장 마운드에 오를 때 부산 팬들은 부산 사나이를 향해 ‘부산갈매기’를 목이 터져라 불렀다.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운동장 밖에서도 롯데의 그 유니폼을 입고 잠을 잘 것 같았던 그들에게도 종점은 찾아왔다. 막내 주형광이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 지도자의 길을 걷기로 한 것이다. 나이는 어리지만 리더십이 좋고, 후배들을 챙길 줄 알았던 주형광이 먼저 현역의 옷을 벗었다.

염종석과 손민한은 내년에도 사직구장 마운드에 선다. 올해 4승8패로 부진했던 염종석은 마지막이란 각오로, 13승을 올린 손민한은 에이스로서 나선다. 개인적으로 삼총사의 톱니바퀴가 빠진 게 너무 아쉽다. 언제 그런 ‘홈보이’들이 홈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마운드에 나란히 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한 해 연고지 고교 졸업생 가운데 한 명이 주전으로 자리 잡기 힘든 요즘이고 보면, 염종석-손민한-주형광이 만들어준 푸른 추억은 오래오래 남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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