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북카페] "실패학, 경영학 명저의 오류를 폭로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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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초난감 기업의 조건
릭 채프먼 지음,
박재호 외 옮김,
에이콘,
584쪽, 1만8000원

톰 피터스는 살아있는 경영학의 구루(영적 스승)으로 꼽힌다. 1982년 『초우량 기업의 조건』을 펴내면서 화려하게 등장했다. IBM 등 초우량 기업의 성공요인을 분석한 이 책은 미국에서만 4년 동안 300만부 이상 팔리며 기업인의 필독서 반열에 올랐다. ‘경영학 100대 명저’ 등에 빠짐없이 꼽히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게 엉터리란다. 그가 초우량 기업으로 꼽았던 기업들에 심각한 결함이 있음이 드러나서다. 전용 워드프로세서 시장을 주도하던 라니어 사는 워드용 소프트 웨어가 등장하면서 아예 문을 닫았다. IBM은 미국 기업의 자존심에서 미국 기업의 비극으로 전락했다. 제록스는 망하기 일보 직전까지 몰렸고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사는 자기네 컴퓨터가 시장에서 퇴출 당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결정적으로 피터스는 2002년 책에 사용된 일부 자료가 위조됐다고 시인했다.

이 책의 제목은 그 ‘경영학 명저’를 풍자한 것이다. 원제는 ‘어리석음에 관한 탐구(The Search of Stupidity)’지만 내용을 감안하면 번역서의 제목이 낫다. 한때 잘 나가던 첨단 IT기업들이 자기 발등을 찍은 최악의 마케팅 사례를 독특하고 유쾌하게 다루기 때문이다.

스트리트 테크놀로지란 회사는 업무용 소프트웨어의 홍보책자의 표지에 “직원을 절반으로 줄이는 방법”이란 카피를 내세웠다. 그리고 안에는 “남아 있는 직원 절반에게 이 소프트웨어를 나눠주십시오”라고 쓴 우편홍보물을 발송했다. 그 회사 대표는 “직원용이 아니라 상사용”이라 주장했지만 직장에서 가장 먼저 우편물을 확인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 못한 조치였다.

컴퓨터 업계의 거인 IBM이 83년 저지른 실수는 더 치명적이다. 가족용 컴퓨터 ‘피넛’를 출시한다고 온갖 폼을 다 잡고는 기존제품인 ‘XT’의 변형을 내놓았다. 문제는 이 신제품이 XT의 판매를 갉아먹을까 봐 기능감축 마케팅을 택한 결과 모양은 흉측하고, 용량은 적고, 속도는 느린 변종이 됐다는 점이다. 결과는? 출시 후 2년에 걸쳐 ‘피넛’은 서서히 죽어갔고 결국 87년 IBM이 PC시장에서 철수하는 계기가 됐다.

책에는 이 같은 사례가 수두룩하다. 지은이는 잘 나가는 기업의 성공사례보다 실패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기업의 성패는 경쟁사보다 적은 실수를 하는 것,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는 것에 달렸다고 주장하는데 책을 읽다 보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하지만 읽기는 쉽지 않다. IT기업 사례를 분석했기에 일반독자는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들이 툭툭 튀어나오는 탓이다. 그래도 웃음을 자아내는 문체가 이런 어려움을 넘기는 데 도움을 준다. ‘피넛’의 투박한 키보드를 꼬집는데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한 논평자는 ‘산타클로스의 요정 중 한 명이 작은 망치로 손가락을 끊임없이 내려지는 느낌’이라했다”는 식이다. 모토로라의 저궤도 위성통신 프로젝트 ‘이리듐’의 실패에 대해선 “주주들은 프로젝트 마케팅 팀과 공학 팀을 우주복 없이 로켓에 태워 재정 폭락 궤도와 함께 선회시켜야 한다”고 비꼰다.

어렵지만 글이 유쾌하기에, 초반부를 넘기면 얻는 것이 적지 않을 책이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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