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여성] 정보통신부 IT정책자문관 송정희 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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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이긴 해도 현실을 너무 몰라' '실무는 오래 했지만 비전과 국제적 안목이 부족해'. 정보통신부의 IT 정책자문관 송정희(宋正姬.46)박사는 이 같은 비판을 무색케 하는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1981년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곧장 유학길에 올라 미 카네기 멜론대학에서 공학 박사학위를 땄다. 그리고 귀국한 뒤 삼성종합기술원 전자기기연구소 선임연구원.삼성전자 전략기획실 부장 등으로 10년간 일했다. 그 다음 직업은 교수. 서강대 영상전문대학원 미디어공학과 조교수로 2년간 강의하다 2001년 미디어 교육 벤처기업인 ㈜텔리젠을 인수해 CEO로서 산업현장을 누비고 다녔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하기엔 저의 여건이 너무 좋기만 했나요? 그래도 대기업이든 벤처기업이든 업계 사람들이 하나를 얘기하면 둘 셋을 알아들을 정도로 현장을 잘 안다고 자부합니다. 연구자로서의 경력도 발탁되는 데 한몫 했겠지요."

정보통신부 청사가 자리잡은 KT 빌딩 13층에 있는 그의 사무실을 찾았을 때 송박사는 검은색 바지에 카디건을 걸친 편안한 차림이었다. 빠지지 않는 미모에다 한눈에 영민함이 느껴지는 그는 "요즘은 만만한 아줌마가 다 됐다"고 말했지만 목소리와 행동거지에서는 엘리트만이 갖는 자신감과 당당함이 묻어났다.

정부와 업계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지난해 7월부터 IT 정책자문관으로 근무 중인 송박사가 하는 일은 정부와 산업현장의 가교 역할이다. "좋게 말하면 창구 역할, 나쁘게 말하면 시어머니 노릇 같은 거예요. 산업현장의 요구가 정부의 IT산업 정책에 반영되도록 하는 거지요."

특히 그는 정통부가 정부 부처로서는 처음으로 도입한 프로젝트 매니저(project manager.이하 PM)제도의 수석 PM으로서 차세대 성장동력 연구사업을 총괄하고 조정하는 중책을 맡았다. 성장동력사업이란 향후 한국의 국민소득을 2만달러 수준으로 끌어올릴 국가 핵심 전략사업. 지능형 로봇.차세대 이동통신.소프트웨어 솔루션 등 고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10종류의 첨단 산업이 선정돼 있다. 홍일점인 송박사는 7명의 다른 PM과 함께 성장동력 육성 전략을 짜고 추진하며 실효성 없는 과제는 과감히 중단할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받았다.

"일을 하지 않는 나의 모습은 상상할 수 없어요. 웬만해서는 일로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데 엉뚱한 것 때문에 에너지를 좀 소모했죠." 그가 겪은 엉뚱한 일이란 '홍일점' 또는 '최초' 라는 수식어 때문에 치러야 했던 성차별 문제였다. 89년 첫발을 디딘 연구소에서 그는 유니폼을 입어야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월급도 차이가 났다. 유일한 연구직이자 팀장인 송박사도 사무직 여직원처럼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주변에서 얼마나 오래 다닐까 내기도 많이 했다고 하데요. 누가 뭐라 해도 아랑곳 하지 않는 성격인지라 참고 견딜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2년 뒤 삼성전자 전략기획실로 옮기면서 그는 유니폼 투쟁(?)을 벌여 관철시키는 투지를 보였다. 회사가 곤혹스러워 했지만 그는 열정과 실력으로 주변의 입방아를 막아냈다. 일이 많으면 바닥에 스티로폼을 깔고 새우잠을 자면서 일을 했다. 신규사업팀.인재개발연구소 등에 근무했던 송박사는 이때 비디오 가라오케.디지틀 비디오 등을 개발하고 일찌감치 삼성그룹에 인터넷을 도입하기도 했다.

"생활의 동반자를 찾아 뒤늦게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다들 믿지 않았다"며 웃음짓는 송박사는 남편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인적사항을 밝히기를 사양했다. 다만 9세 된 아들과 7세 된 딸 얘기가 나올 때는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번지는 보통의 엄마 모습 그대로였다.

"IT 업계의 글로벌 비즈니스를 해보고 싶어요. 네트워크도 만들어지고 전체를 조망하는 안목이 생겼다는 자신감이 조금씩 들거든요." 2년 계약기간의 정책자문관에 이어 국제 IT업계에서 이름을 날릴 송박사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은 성급한 상상만은 아닐 것 같았다.

문경란 여성전문기자<moonk21@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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