丹心의 예향 진주 개천 예술제 축제 한마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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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진주라 천리길」.
남쪽지방의 고도(古都)진주는 묵향냄새가 물씬 풍기는 듯한 전원도시다.하지만 조용해 보이는 분위기와는 달리 한이 많은 도시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당시인 1593년 왜군의 진주성 2차 침공으로 당시진주 전체 인구의 3분의2인 6만명이 죽었고 일제시대인 1925년에는 도청소재지가 부산으로 옮겨지는 바람에 지역의 힘이 내리막길로 접어드는 고통도 겪었다.
그러나 진주사람들과 얘기를 해보면 은연중에 강한 자긍심을 느낄 수 있다.그 자긍심은 진주성과 논개(論介)로 대표되는 저항정신과 단심(丹心)이 밑바탕이 돼 있고 그 정신은 진주의 문화유적과 관광지 곳곳에서 찾아볼 수있다.
때마침 3일부터 8일까지 전국 최대 종합예술제인 개천예술제가열려 이 시기에 진주를 찾는 사람들은 축제분위기에 흠뻑 젖을 수 있다.
예향(藝鄕)진주가 44번째로 여는 이번 개천예술제는 「내실있는 만남」이란 슬로건 아래 열리고 있다.
49년 국내 최초로 시작한 이 예술제는 6.25와 10.26을 제외하고는 줄곧 그 맥을 이어온 국내 최초.최대의 예술제다. 이번 개천예술제에는 서제(序祭)를 비롯해 6일동안 소싸움.
유등행사 등 총 93개의 행사가 열리며 연인원 3만5천여명의 예술인들이 참여한다.
개천예술제 운영위원회 서영수(徐英銖)사무국장은 『이번 예술제에는 시민들이 동참할 수 있는 행사들을 많이 마련했다』고 밝히고 『예술제 기간동안 1백50여만명이 진주를 찾을 것』으로 내다봤다. 진주성과 칠암동 고수부지 풍물시장을 잇는 임시부교도 작년에는 일방 통행만 가능했으나 이번에는 왕복통행이 가능하다.
진주의 대명사가 되다시피한 촉석루를 찾은 늦가을의 화창한 날,촉석루를 찾은 관광객들은 모두 밝은 얼굴이었다.
그들의 얼굴에서는 촉석루가 공민왕때 지어진 후 9번이나 중수하는 영욕을 겪었으며 한때 국보로 지정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였다.
해방후 국보로 지정됐다가 6.25때 북한군의 작전본부로 이용되는 바람에 폭격으로 불타버린 사연이 남강물과 함께 흘러가버린탓일까. 촉석루는 60년 재건된 뒤 지방문화재자료 제8호로 지정돼 있을 뿐이다.
***의기사당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 맞추었네.
」 시인 변영로가 노래했던 논개의 영을 모시는 사당이다.
논개는 전북 장수군 계내면 주촌 출신이며 성은 朱씨.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남편 최경회를 따라 진주성에 이르러 부군을 도와 왜적과 싸웠다.
1593년 성이 함락되자 슬픔과 분함을 참지 못하고 논개는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몸을 던져 순국의 꽃으로 사라졌다.
이당 김은호가 그렸다는 사당 안 논개의 초상화는 무척이나 인자한 얼굴이라 오히려 슬픔을 더욱 깊게 한다.
***진양호 유원지 진양호는 69년 준공된 다목적 댐으로 70년 진양호 주변 24만8천평이 유원지로 고시됐다.
수려한 자연경관과 넓은 호수를 바라볼 수 있는 탁 트인 전망,그리고 어린이동산.동물원.각종 위락시설은 진주사람은 물론 외지인들에게도 사랑을 받고있다.담수량 1억3천6백만t의 진양호는많은 어종을 보유하고 있어 낚시터로도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河智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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