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코너>민족주의 국내외학계 뜨거운 논쟁의 현주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이제 민족주의는 사라지는가.
세계화.국제화의 전지구적 회오리 속에서 해외및 국내학계에서는민족국가와 민족국가를 경계로 하는 민족주의의 소멸 여부를 둘러싼 흥미있는 논쟁이 한창 전개되고 있다.
이 논쟁은 냉전체제가 붕괴되고 북미(北美)자유무역협정(NAFTA).유럽연합(EU).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APEC)등 세계경제의 블록화가 가시적 성과로 나타나던 80년대 후반부터 해외에서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국내에서는 우루 과이라운드 협상이 정치.경제.문화등 사회 각 부문에 점차 파장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한 90년대 이후부터 논의가 활성화하고 있다.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90년 홉스봄(E Hobsbawm)의 『1780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창작과 비평사.94년 국내번역출간)를 필두로 각국에서 발행되는 사회과학 잡지들이 잇따라이를 다뤄오고 있으며 최근에는 매슈 호스먼과 앤드루 마셜이 『민족국가 이후:시민.종족과 새로운 세계의 무질서』(하퍼 콜린스刊)를 펴내 서구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국내에서는 최근 『경제와 사회』가을호에서 정진영(세종연구소 연구원)씨가 「세계화와 국민국가의 장래」라는 글 을 통해 이 주제를 쟁점별로정리하고 있고,10월29일 열린 한국사회학회 심포지엄에서도 서울대 박명규(사회학)교수가 「민족사회학:국제화 시대의 민족과 민족문제」라는 논문을 통해 역시 이 주제를 다뤘다.
오늘날 세계화는 국가들 사이의 상호 영향력을 증대시킬 뿐 아니라 상호 의존도를 높여 국제협력의 필요성을 증대시키고 있다.
개인.기업.국가에 부여해왔던 권리의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 전세계적 차원에서 시민적 권리,국가와 개인의 관계,국 가와 국가의관계가 새롭게 정립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민족국가 이후』에서는 이런 현상을 두고 『자본 이동이 국경을 초월해 이루어지고 유럽연합과 같은 초국가 기구가 개별국가의 역할을 대행하고 있기때문에 민족국가는 곧 소멸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전지구적으로 국제화.세계화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옛공산권 지역과 제3세계에서 민족주의적.인종주의적 경향이 나타나고 있어 민족주의가 부활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인상도 주고 있으나 이는 세계화 추세에 반대하거나 저항하는 현 상이라기보다 세계화의 추세에 반영하여 일어날 수 있는 세계화에의 동참 과정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다.
그렇다면 「민족국가」단위는 이제 소멸하는 것인가.이에 대해 대부분의 논자들은 세계화와 민족국가를 대립적인 관계로 파악,세계화 과정이 민족국가에 집중돼왔던 권력을 현저히 약화시켜 결국민족국가의 역할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
그럼에도 민족국가의 역할을 여전히 강조하는 논자들도 있다.세계화가 곧 자본주의의 논리이고 국가는 자국 자본의 이익을 옹호한다고 전제,현재의 국제화가 선진국자본의 이해의 극대화논리에 떠받쳐지고 있기 때문에 현 단계에서 민족국가의 「 역할 감소」를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세계화와 민족국가를 이분법적이고 배타적으로 파악하기보다는 상호 보완적이고 상호 규정적인 관계로 인식해야 한다는주장도 있다.세종연구소의 정진영연구원은 『경제와 사회』가을호에서 민족국가를 역사 과정에서 그 형태를 달리하는 역사적 형태로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그는 새로운 형태의 민족국가가 어떤 형태를 띠게 될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국가들 사이의 협력 증대,개인이나 기업의 권리에 대한 국제적 보장 확대,그리고공동의 규칙에 기초한 국제기구들 의 권한 강화 등 역사적 조건의 변화에 따른 민족국가 성격 변화를 예견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