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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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떠난 자와 남는 자(50) 숙사 앞마당으로 나온 둘은 어정거리면서 잠시 방파제 쪽을 바라보았다.요즘은매일 뭔 놈의 날씨가 이렇게 좋나 모르겠다.씻어놓은 듯한 하늘을 바라보던 눈길을 돌리며 태성이 말했다.
『그래,어제 밤에는 뭐 좋은 꿈 꿨냐?』 꿈이란,무슨 새로운계획같은 게 떠오른 게 없느냐는 그들만의 암호였다.
『꿈에 고향 보았자 싱숭생숭이고 어머니를 만나봤자 눈물바다지.꿈같은 거 안 꾸고 산다.』 별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다는 말이었다.지나가는 남이 들어도 무슨 소린지 모르게 그들은 편안하게 서서 중얼댔다.
옆에서 다른 조의 젊은이들이 밥을 먹고 나오며 떠들어댔다.
『그래도 전쟁 끌려나간 젊은 애들 보다야 여기가 나은 거 아냐?』 『부처님 가운데 토막같은 소리만 하고 있네.』 저렇게 생각하며 여기에 있는 녀석들도 있었구나 싶어서 길남이 그들을 돌아보았다.이름을 모르겠는 키가 자그마한 사내가 말했다.
『죽을 염려는 덜하잖아.』 『이게 사람 사는 거냐?』 『글쎄모르겠다.나야 뭐 금송아지 길러 본 적도 없고,비단이불 덮어 본 적도 없으니.』 잇새에 뭔가가 낀 듯이 입을 실룩거리는 키작은 사내에게 옆 사람이 물었다.
『너,머슴 살았다면서….』 『그래서 받은 새경으로 장리쌀 놓아서 늘쿠던 게 있기는 한데,여기 와 이러고 있으니 그거나마 어디 제대로 남아 나겠냐?』 『너도 참 딱하기는…뒷줄에 서라면서럽겠다.』 『삽살개 뒷다리지 뭐.어디서 어떻게 살든,그런 거이미 버린지 오랜 몸이다.』 『아침부터 무슨 그런 말을 하냐.
』 『그저 잉어 숭어가 나서니까 송사리도 주제에 물고기라고 따라나선다고,내 꼴이 그꼴이다.밥타령 옷타령은커녕 잠자리타령도 해 본 적 없이 살았으니까.』 별놈들 다 있구나 생각하며 태성이 말했다.
『나는 밤에 막장으로 내려가니까 오늘은 서로 시간이 안 맞는다.내일에나 얘길하자.』 얘기하고 말고도 없는 거다.그냥 정한대로 이제는 밀고나가는 거 밖에.길남이 눈에 힘을 주면서 태성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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