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집에서 노는 가장’ 1년 새 18만 명 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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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직업이 없어 집에서 ‘노는 가장(家長)’이 올 3분기 255만 명에 달했다. 1년 새 18만 명이나 늘어난 것이다. 노는 가장은 2003년 이후 계속 늘더니 올해 전체의 15%를 넘었다. 가장이 소득이 없으면 모아둔 돈을 쓰거나 다른 가족이 생업 전선에 나서야 한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정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가장과 가족의 근심이 깊어질 것이고, 국가로도 큰 손실이다. 이런 집이 늘면 사회 곳곳에 무기력증과 반목이 늘고, 반사회적 정서가 퍼질 우려도 있다.

 노는 가장이 느는 것은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올해 취업자는 29만 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정부의 당초 목표인 30만 명도 채우지 못했다. 청년층 취업 준비생만 50만 명을 넘는 점을 감안하면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하다. 여기에다 직장이나 사업을 그만두고 새 일자리를 찾는 중년층이 늘고 있다. 이들 대다수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돈을 계속 벌어야 한다. 하지만 있는 일자리도 없어지는 마당에 40~50대가 다른 회사로 옮기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창업도 절차가 복잡하고, 경쟁이 치열해 선뜻 용기를 내기 어렵다.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한국의 창업 절차는 세계 95위로 최하위권이다.

 고령화도 노는 가장이 늘어나는 큰 이유다. 65세 이상 노인이 열 명 중 한 명꼴이고, 2050년에 열 명 중 네 명꼴로 늘어난다. 하지만 정년은 짧고, 노인을 위한 일자리는 드물고, 노후 대비는 부실하다. 교육비에서 결혼 비용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자식 부양 때문에 부모들은 허리가 휜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이 은퇴하면 사는 게 막막해진다.

 다음 정부는 공허한 이념 다툼에서 벗어나 일자리를 늘리는 실용을 추구하기 바란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층도, 중간에 직장을 바꾸는 중년층도, 은퇴하는 고령층도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일자리다. 일자리를 늘리는 기업가가 애국자요, 그런 여건을 만들어 주는 정치인이 훌륭한 지도자다. 가장이 일해야 가정이 화목하고, 사회도 건강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