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진검승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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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藏)의 명성은 진검승부(眞劍勝負) 덕분이다. 그가 일본 역사상 최강의 검객으로 평가받는 것은 진검승부에서 패배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13세에 첫 진검승부를 벌여 상대를 죽인 그는 29세까지 60여회의 진검승부에서 단 한차례도 지지 않았다. 그는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오로지 최강자가 되겠다는 목적 하나를 이루기 위해 떠돌이 낭인 생활을 하며 수련과 승부에만 몰두했다고 한다.

요즘엔 진검승부를 구경하기 힘들다. 일본 검도에서도 진검을 쓰는 일은 거의 없다. 대나무로 만든 죽도로 주로 수련한다. 반면 해동검도는 진검 수련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초급자 때도 죽도 대신 나무를 깎아 만든 목검으로 수련하고,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가면 진검을 사용한다고 한다. 그러나 해동검도에서도 진검승부를 하는 일은 별로 없다.

진검승부는 매우 위험하다. 한쪽이 생명을 잃거나 칼을 잡을 수 없을 정도의 중상을 입어야만 끝나는 승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검승부에 나설 때는 목숨을 내놓을 각오가 있어야 한다. 이런 점 때문에 요새는 한쪽이 망할 때까지 벌어지는 경쟁이나 라이벌끼리 정면으로 맞붙는 승부 등에 진검승부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 등 국어사전엔 진검승부나 진검이란 단어가 없다. 진검승부란 말은 일본어 '신켄쇼부'의 우리말 발음이다. 그래서 진검승부란 일본식 표현을 써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진검승부는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즐겨 쓰는 말이다. 그는 첫번째 재경부 장관을 그만 두던 2000년 8월 퇴임사에서 "구조조정은 구색 갖추기나 시늉만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며, 연습도 용납되지 않는 냉엄한 진검승부"라고 말했다. 구조조정은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가를 지상과제라는 것이다.

李부총리는 11일 취임사에서도 "오늘의 우리 경제는 학습기간을 줄 만큼 한가롭지 않고, 아마추어의 시행착오를 받아들일 만큼 여유롭지도 못하다"고 강조했다. 자칫 실수했다간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에 놓일 정도로 우리 경제가 어렵다는 진단은 섬뜩하지만, 목숨을 건 진검승부에 나서는 것과 같은 각오로 경제난국을 헤쳐나가겠다는 의지는 기대를 갖게 한다.

이세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