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입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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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나희덕(1966~) '입김' 전문

구름인가, 했더니 연기의 그림자였다

흩날리는 연기 그림자가 내 머리 위로 지나갔다

아직 훈기가 남아 있었다

그 중 한 줄기는 더 낮게 내려와

목련나무 허리를 잠시 어루만지고 올라갔다

그 다문 입술을 만지려는 순간

내 손이 꽃봉오리 위에서 연기 그림자와 겹쳐졌다

아, 이것은 누구의 입맞춤인가



콜카타(옛 캘커타)의 하우라역 앞을 흐르는 강변에 꽃시장이 있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게 펼쳐진 꽃시장 길은 형형색색의 꽃들과 꽃들이 피워낸 향기로 천국만 같았다. 한 상인이 내게 꽃을 보여 주었다. 연잎으로 싼 포장을 몇 겹 벗기니 안개 속인 듯 꽃의 얼굴이 보였다. 노란빛의 목련을 닮은 꽃…. 그렇게 평화롭고 아늑하고 우아한 빛과 형상의 꽃을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상인이 그 꽃의 이름을 불러 주었다. 쫌빠플라워. 스무살 무렵, 타고르의 시 속에서 구름처럼 피어나던 꽃. 라마야나 이야기를 읽는 엄마의 곁에서 꽃이 된 아기가 향기를 뿌려주던 꽃. 엄마와 아기의 입맞춤 속에서 환하게 피어나던 꽃….

곽재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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