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라운지] 어, 승무원들 다 어디 갔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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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미주나 유럽으로 장거리 비행을 하다 보면 식사가 끝난 뒤 기내 조명이 적당히 어두워지며 취침 분위기가 만들어지곤 한다.

이때는 평소 기내를 바쁘게 다니며 승객들을 살피던 객실 승무원들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렇다고 승무원들이 승객 좌석 중 빈 곳에서 쉬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과연 객실 승무원들은 이 시간에 어디에 있는 걸까. 답은 바로 승무원들만의 휴식공간인 '벙커(Bunker)'다. 벙커는 승무원들 간에 부르는 명칭으로 정식 용어는 'Crew rest(승무원 휴식 칸)'다.

BBK 사건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국내로 송환된 김경준씨가 기내에서 승객들 눈에 안 띄게 숨어 있던 곳이 바로 이 벙커다. 승무원들은 이 벙커에서 1시간30분~2시간씩 2교대로 잠을 청한다. 대형 항공기인 보잉 747-400의 경우 승무원 16명이 타며 통상 8명씩 교대로 잠을 잔다.

벙커는 항공기를 주문할 때 별도로 추가하는 옵션 사항이다. 주로 장거리를 운항하는 대형 비행기에 설치된다. 컨테이너형으로 필요에 따라 설치했다가 떼어 내는 구조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또 항공사마다 주문에 따라 구조도 제각각이다.

대한항공의 경우 보유 항공기 중 장거리용인 보잉 747-400과 보잉 777-200, A330에만 벙커가 있다. 보잉 747-400의 벙커는 꼬리날개 쪽에 있으며, 객실 복도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 출입문은 화장실문과 연이어 있어 가끔 헛갈린 승객들이 문을 열려고 애쓰기도 한다. 한 항공사 승무원은 "보통 안에서 문을 잠그지만 가끔 깜박하고 안 잠근 경우 승객이 안까지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이 문을 열고 나선형 계단을 조금 오르면 벙커다. 실내에는 2층 침대 4개가 놓여 있어 8명이 동시에 누울 수 있다. 이코노미석 크기의 의자도 2개가 놓여 있다. 천장 높이는 성인이 서 있는 데 별 불편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반면 보잉 777-200과 A330은 객실 복도 아래 화물칸에 있다. 보잉 777은 기내 앞에서 뒤쪽으로 4분의 3 지점쯤 오른쪽 복도 쪽에 출입구가 있다. 반면 A330은 거의 같은 지점의 왼쪽 복도에 입구가 위치한다.

이들 벙커는 출입문을 열고 아래로 뻗어 있는 계단을 내려가면 된다. 물론 출입문은 승무원들만이 열 수 있도록 돼 있다.

역시 2층 침대 4개가 놓여 있다. 그러나 천장이 1m50㎝ 정도로 낮아 제대로 고개를 들고 서 있기는 어렵다. 또 침대와 침대 사이 높이도 70㎝가량밖에 안 돼 침대에 걸터앉아 있기도 힘들다고 한다. 벙커 내엔 인터폰과 에어컨이 있고 항공사에 따라 영화 시청이 가능한 모니터가 달려 있기도 하다. 그러나 실내가 비좁고 잠을 청하는 시간도 짧아 비행의 피로를 제대로 털어내기는 어렵다고 한다.

객실 승무원들과 달리 조종사들은 통상 1등석 중 빈자리에서 교대로 휴식을 취한다. 최근 싱가포르항공이 상업 운항을 시작한 초대형 항공기 A380의 경우는 조종석 뒤쪽에 별도의 조종사용 휴식처가 마련돼 있다고 한다. 취침 시간엔 가급적 승무원들을 자주 찾지 않는 배려도 필요할 듯하다.

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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