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독서편지] 채윤희 올 댓 시네마 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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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아! 이모야. 마냥 어린 아이 같던 네가 늠름한 사나이로 성장해서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되었다니 정말 세월이 유수 같다는 말이 실감나는구나.

인혁아, 너 그때 기억나니? 네가 아홉 살 때 말이다. 엄마 아빠가 모두 외국으로 나가고 너희 두 남매만 서울에 있었지? 하루는 밖에서 놀다가 집에 돌아온 너희 남매가 집 열쇠를 잃어버렸다며 이모 회사로 울면서 전화했었잖아. 넌 이 얘길 들으면 쑥스러워서 그런 적 없다고 시치미를 떼겠지만, 이모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단다. 빨리 와달라고, 세상이 무너질 듯이 서럽게 울던 네 목소리에 회사 일을 제쳐놓고 달려갔었지.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그 사건이 네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게 될 수많은 어려움 중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되는구나.

갑자기 새삼스럽게 왜 그 얘길 꺼내느냐고 너는 묻겠지? 얼마 전에 이모가 일 때문에 '아홉살 인생'이라는 책을 다시 읽으면서 문득 아홉 살 때의 네 모습이 떠오르더라고.

아홉 살, 어리다면 참 어린 나이겠지? 겨우 아홉 살이 인생에 대해서 뭘 알겠느냐고 그렇게 생각할지도 몰라.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겠지. 그게 당연할지도 모르고. 하지만 이 책에는 이렇게 쓰여 있어.

"지나치게 행복했던 사람이 아니라면, 아홉 살은 세상을 느낄 만한 나이다."

내 생각도 그래. 인생을 느끼는 데 나이란 별 상관이 없다고. 아홉 살에는 아홉 살만큼, 아흔 살은 아흔 살만큼, 꼭 그만큼 느낄 수 있는 인생이 준비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네가 아홉 살 때 겪었던 그 곤란함도, 그리고 지금 군인으로서 겪는 어려움도 인생에서 꼭 한번쯤은 느껴야만 하는 일종의 과정으로 생각해. 그것들이 네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자양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책에 나오는 구절로 이만 인사할게. 다시 만날 때는 더욱 씩씩한 모습으로 만나자.

"아홉 살이 끝났다고 해서, 내 인생마저 끝난 것은 아니다. 인생에는 죽는 순간까지 단절이 없다. 그냥 쭈욱 진행되는 과정이다. 그 과정 속에는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고, 낭만도 있고, 고통도 있고, 욕망도 있고, 좌절도 있고, 사랑도 있고, 증오도 있다. 그러나 인생의 어느 한 측면만을 지나치게 과장해, 그것이 인생의 전부이리라 착각할 필요는 없다. 기쁨 때문에, 슬픔 때문에, 낭만 때문에, 고통 때문에, 좌절 때문에, 사랑 때문에, 증오 때문에 …또는 과거 때문에, 현재 때문에, 미래 때문에 … 혼자만의 울타리를 쌓으려 드는 것은 더더욱 어리석은 짓이다. 나 또한 내 아홉 살에 울타리를 치고 싶은 생각은 결코 없다. 내 인생은 아홉 살에서 끝난 게 아니므로, 그리하여 우리는 또다시 인생 이야기를 흥미진진한 목소리로 꺼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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