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조선은 신하들이 말아먹었다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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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조선의 왕과 신하, 부국강병을 논하다
신동준 지음,
살림,
592쪽. 1만8000원

역사 상식은 역사책에서만 얻는 게 아니다. 영화나 드라마, 또는 소설을 통해 얻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재미있으라고 각색한 얘기를 그런가 보다 하며 정사로 받아들인다는 점. 이 때 사실과는 동떨어진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이 생겨나는 법이다.

영화 ‘왕의 남자’, 소설 『단종애사』(이광수)와 『금삼의 피』(박종화)가 좋은 예다. 세조와 연산군을 여지없이 폭군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신문기자 출신의 정치학자인 저자는 전혀 다른 사실을 전한다. 세조와 연산군 모두 신권(臣權)의 발호를 억누르려다 그 같은 오명을 쓰게 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권력욕에 눈이 어두워 조카의 보위를 찬탈했다는 세조에 대한 왜곡된 평가를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산군도 사림 세력을 견제하려다 쿠데타로 실각한 비운의 군주로 평가한다.

역사는 누가 쓰고, 누가 소유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럼, 조선의 역사는 누가 썼나. 왕이 아니라 신하들이었다. 이 때문에 신권이 비대해진 조선 중기 이후의 실록은 신하의 시각으로 기록됐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예컨대 명군으로 기록된 왕은 신하들에게 설설 기는 나약한 임금이었고, 왕권을 탄탄히 다진 임금은 신하들에 의해 폭군으로 기록됐다고 한다.

저자는 신하의 시각에서 쓴 역사에서 벗어나자고 한다. 그리고 왕권과 신권 사이의 권력투쟁이라는 틀에서 조선왕조 500년의 정치사의 주요 국면을 새롭게 해석한다. 신권 우위의 국가를 구상한 정도전과 왕권을 확립하려는 이방원의 대결에서 시작해, 외세에 휘둘리다 나라를 내준 고종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일관된 해설이 이어진다. 건조하지만 박진감 있는 글에는 정치부 기자 10년 경력이 담긴 듯하다.

저자는 책 곳곳에서 강력한 통치 리더십을 강조한다. ‘군약신강(君弱臣强)’의 통치 구조가 조선을 말아먹었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결론은 자연스럽게 통치 리더십이 확고해야 나라가 안정된다는 쪽으로 흐른다. 대통령 선거가 임박한 시점에서 강력한 리더십에 대한 저자의 염원은 독자들에게 과연 어떤 선택을 요구하는 걸까.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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